모세가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광야 뒤편으로 양 떼를 몰고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더라 –출애굽기 3:1.
광야 뒤편은 오랫동안 하나님께서 많은 종들을 가르치신 학교로 이해되어 왔으며, 그중 모세가 가장 대표적이다. 40세의 전성기에 그의 모습은 이러했다. …애굽인의 모든 지혜를 배워 말과 행위에 능하더라. 나이가 사십이 되었을 때 자기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그의 마음에 일어났더라 –사도행전 7:22-23.
나는 하나님이 뛰어난 능력과 소질을 갖추고 훈련을 받은 사람들을 사용하실 수 있고 실제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적 리더십에는 행함과 성취와 업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요소가 필요하다. 열정적인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은 종종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너무 적고 육체에 대한 신뢰가 너무 많은 데 있다. 이 교만과 조급함은 신학교에서 다루어지지 않으며 보통 경계하며 맡은 일을 수행하는 동안에도 근절되지 않는다. 많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그것은 황량한 모래밭에서 영혼으로부터 뽑혀 나온다. 생명과 결실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메마르고 버려진 땅은 많은 종들이 얼굴을 티끌에 묻고 아무 활동도 하지 못함, 결실 없음, 거절당함처럼 보이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모세의 삶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그는 처음 40년을 애굽의 지혜를 배우며, 다음 40년을 미디안에서 목자로, 마지막 40년을 이스라엘의 목자로 보냈다. 그의 순례의 첫 3분의 1은 엄청난 활동과 진보와 성취로 가득했을 것이라 상상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났을 때의 이야기를 틀림없이 거듭 들었을 것이다. 곧 그가 …심히 아름다워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러졌더라 –사도행전 7:20.
바로의 딸이 그를 강에서 기적적으로 구출한 일은 그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도구가 되도록 정해져 있음을 확인해 주었을 것이다. 온 나라의 관심을 한몸에 받던 이 사람이 …말과 행위에 능하였으니 –사도행전 7:22,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이 넘쳤던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모세는 교회 지도자의 이상적인 후보자로 높이 평가되었을 것이다. 그는 모든 면에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교육 면에서 동족들보다 뛰어났고, 천부적인 능력과 재정적 자원과 영적 은사도 보통 수준을 넘어섰다. 그는 애굽의 ‘대학’을 거쳐 말과 행위에 능한 사람으로 나왔으며 그의 삶에는 하나님의 명백한 소명이 있었다. 그는 보수적인 사람으로서 …잠시 죄의 즐거움을 누리기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택하였더라 –히브리서 11:2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훌륭한 자격을 갖추고도 그는 하나님이 부르신 일을 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맞추어 그를 미디안 땅으로 인도하여 또 다른 학교에 등록시키시고, 실망과 거절, 무명과 고독, 이루어지지 않은 꿈과 갈망이라는 쓴 나물을 먹게 하셨다. 이전에는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가 되려는 포부가 있었지만, 그의 삶의 이 시기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전개되었다.
출애굽기의 기록에서 우리는 그의 삶의 마지막 3분의 1이 복잡하게 얽힌 일들과 중대한 사역으로 가득했음을 알게 된다. 애굽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읽을거리이며 큰 통찰을 제공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위대한 모세와 그가 하나님과 역동적으로 협력한 모습을 솔직히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처해 있는 곳은 그의 삶 가운데 별다른 사건이 없던 중간의 40년이다. 이 사십 년을 담고 있는 구절은 몇십 구절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엄청난 인내와 내면의 성찰, 어쩌면 약간의 좌절까지도 새겨 넣은 철저한 교육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그것은 우리 주위에 펼쳐진 시간의 메마른 모래가 우리의 건조하고 딱딱해진 마음, 곧 실패와 과거의 죄가 남긴 결과로 쪼그라들고 쇠약해진 마음을 드러내는 것 외에는 아무 결실도 맺지 못하는 듯한 시기를 나타낸다. 이런 때 우리는 믿음이 약해질 수 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을 하나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헛되고 하루하루가 전날과 똑같다고 여기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격려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일깨워 줄 무언가를 더듬어 찾으면서, 영적 침체의 안개 속에서 비전도 없이 멍하니 걸어 다니기 시작할 수 있다. 때로는 우리의 기도가 천장에 부딪혀 되튀어 와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의 쓸모는 끝났다고 음울하게 조롱하며 웃고 거짓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시련과 시험이 오래 계속되면 우리는 버림받았다고 느낄 수 있다. 심지어 하나님이 우리를 대적하신다고 상상할 수도 있다.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묻는다. “주님, 왜입니까?” 우리는 주 예수님이 겪으신 만큼의 거절과 버림을 경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작고 보잘것없는 영역에서 그런 일을 겪으면 우리의 모든 영적 힘과 활력이 소진되는 듯하다. 우리는 생각한다… 만일 주께서 우리에게 이런 시간을 사십 년 동안 요구하신다면, 우리가 배운 것을 활용할 시간이 우리 생애에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는 완전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육 기간이 얼마나 오래 이어지는지에 너무 마음을 쓰기보다 미디안이 주는 메시지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어떤 이들은 미디안의 쓰라린 매를 맞고 물러나 냉소적인 방관자가 되지만, 우리는 광야의 티끌을 털고 일어나 다음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세부에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새로운 소명을 빚어내시려고 우리를 어려운 자리에 심으실 수 있다. 모세가 자신의 교만과 자기 확신, 믿음의 부족과 자신의 손으로 저지른 철저한 어리석음을 깨달은 것은 미디안에서 홀로 지내는 동안이었다. 이곳 자신의 미디안에서 그는 홀로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수많은 다른 성도들도 그곳에서 그와 함께했다. 야곱의 아들들과 보디발의 아내는 또 다른 활력 넘치는 종, 요셉을 그곳으로 보냈다. 질투하는 왕의 격렬한 분노는 재능 있는 젊은 수금 연주자를 그곳으로 보냈다. 가르침을 거부한 늙고 어리석은 왕조차도 자신의 교만을 뉘우칠 때까지 광야에서 소처럼 풀을 먹는 처지가 되었다.
역사의 기록 곳곳에서 수많은 성도들은 ‘골짜기가 어두울수록 더 많이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넘치는 열정을 한껏 품고 새로운 날의 문턱에 도착하지만, 곧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마침내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만을 든 채 나온다. 말을 속히 하고 행동을 속히 하며 듣기를 더디하던 날들은 지나갔다. 미디안에서 배우는 사람은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큰일을 하리라”에서 “주께서는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로 초점을 옮기는 법을 배운다.
그가 떨며 놀라 이르되 주여, 주께서는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네게 일러 주리라 –사도행전 9:6. 미디안에 새로 도착한 이들은 많은 답을 가지고 있지만, 그 답들 대부분에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는 단막극이 들어 있다. 졸업생들은 말없이 진중하게 걸어 나온다. 그들은 육체를 영과 분리하는 고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이루어 낸 것은…
하나님의 정련
도가니는 은을 위한 것이요 화로는 금을 위한 것이지만, 여호와는 마음을 시험하시느니라 –잠언 17:3. 모세가 미디안의 관문을 통과할 때 하나님이 그의 눈앞에 처음으로 펼쳐 보이신 장면은 우물에서 벌어진 불의였다.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는데… –출애굽기 2:16, 그들은 거친 목자 무리에게 쫓겨나고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의 금권 통치 체제의 모든 측면에서 잘 훈련받았으며, 그 훈련에는 군사적 전문 지식과 세속적 지도력의 모든 측면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힘없는 여목자들을 돕기 위해 나섰을 때 충분히 그들을 도울 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미디안 제사장의 이 딸들은 그 도움을 고맙게 여기며 아버지에게 이렇게 전했다.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 주고, 우리를 위해 물도 넉넉히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 –출애굽기 2:19. 이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 르우엘은 크게 감명을 받아 모세를 환대하고 일자리와 아내를 주었다… 이 모든 것이 한 구절에 담겨 있다. –출애굽기 2:21 참조.
…이방인들을 다스린다고 인정받는 자들이 그들 위에 군림하고, 그들의 높은 자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행사하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마가복음 10:42. 모세가 정의를 추구한 것은 고귀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사고방식은 그저 이방인의 것이었다. 이것은 닭장 안의 서열을 정하는 데는 통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어 내는 데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며,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느니라 –마가복음 10:43-44.
이 가르침은 애굽에도 모세에게도 낯선 것이었다. 많은 훌륭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이방인의 권위를 사용하여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지만, 그것은 가정에서는 좀처럼 통하지 않으며 교회에서는 더욱 무익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택하신 그 그릇을 거의 하룻밤 사이에 왕족에서 프롤레타리아(노동계급)로 옮기셨다. 그에게는 그를 훈련시킨 사람들이 혐오하던 일이 주어졌다—…모든 목자는 애굽 사람들에게 가증한 존재이기 때문이라 –창세기 46:34. 이 도가니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교훈을 가르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다음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공급
그가 온유한 자를 공의로 인도하시며 온유한 자에게 자기의 길을 가르치시리로다 –시편 25:9.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광야 뒤편에 버려두지 않으신다. 오히려 우리를 그분의 충만하심으로 이끄시도록 우리 삶의 형편을 맞추신다. 우리가 분노하는 태도를 품으려는 유혹을 물리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길을 가르치실 수 있다. 그러나 모세가 처한 상황은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을 만한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몇 주가 몇 달로, 몇 달이 몇 년으로, 몇 년이 수십 년으로 흘러가는 내내, 재능 있는 모세는 자기 능력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는 목자로 남아 있었다. 우리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는 ‘기다림’이다.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긴 환난의 시기를 맞게 되며, 우리는 이런 권면을 받는다. …너희를 시험하려고 닥치는 불같은 시련을 무슨 이상한 일이 너희에게 일어난 것처럼 이상히 여기지 말라 –베드로전서 4:12.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미약한 감각으로 하나님의 방식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기다림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를 다음을 위해 준비시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승진
38년, 39년, … 40년. 그러므로 이제 오라.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애굽기 3:10.
어쩌면 하나님은 숫자 40을 무척 좋아하시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는 모세가 자신을 내려놓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완전히 사라졌고, 그는 겸손히 묻는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애굽기 3:11.
모세는 사십 년 전보다 자격이 부족해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자만심은 뜨거운 광야의 태양 아래서 증발해 버렸다. 거친 목초지에서 고집스러운 양들과 함께하며 얻은 경험은 그에게 이것이 거의 불가능한 과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어떤 부르심도 다음과 동떨어져 주어지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약속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증표가 되리니, 네가 애굽에서 백성을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라 –출애굽기 3:12.
모세가 완전에 이르렀다는 뜻은 아니다. 바로 다음 장에서도 모세가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진노하시니… –출애굽기 4:14.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하나님의 칼날 앞에서 직접적인 표적이 된다—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 죽이려 하시니라 –출애굽기 4:24. 그렇다 해도 그의 그릇은 여전히 흙으로 되어 있지만, 불에 구워지는 과정을 거쳐 주님을 섬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우리의 변덕의 바람 때문에 그분의 약속을 거두지 않으실 것이다. 이처럼 위대하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께서는 –출애굽기 3:14 참조, 자신의 백성을 인도하는 막중하고 영원한 임무를 인간의 어깨에 맡기셨다. 그러나 이 임무는 다음이 없이는 수행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능력
모세가 광야에서 보낸 시간을 통해 실제로 정련된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는 그가 성급하게 칼을 휘두르려 했지만, 그곳을 떠날 때에는 손에 지팡이 하나만 들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칼로 그는 잘못을 저지른 애굽 사람 하나를 제압했지만, 지팡이로는 애굽의 전 군대를 이겼다. 하나님의 지팡이가 광야에서 물을 내었다. 연약한 손으로 높이 들었을 때 아말렉에 대한 승리를 확실하게 한 것도 하나님의 지팡이였다. 하나님의 지팡이는 무엇인가? 미디안에서 지내기 전에는 그는 그것이 존재하는 줄조차 거의 몰랐다. 사십 년 후에는 그것이 없는 장면이 거의 없다.
그 지팡이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진리요, 하나님의 증거이지만, 이 모든 것보다도 하나님의 징계이다. 그것이 없으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도 깨닫지도 못한다. 그것이 없이는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며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느니라. 너희가 징계를 견디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아들로 대하시나니,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느냐? 모든 이가 함께 받는 징계를 너희가 받지 않는다면 너희는 사생아이지 아들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2:6-8.
한때 하나님의 백성 위에 군림하며 이방인의 권위를 행사하려 했던 바로 그 모세가 이제는 하나님께 간구하며 그분의 진노가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도록 막고 있다. 모세가 자신들을 죽이려고 이끌어 냈다고 비난하고 한때는 그를 돌로 치려고까지 했던 백성이 이제는 그의 마음과 애정의 중심에 있다. 비록 그들이 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원인인데도 말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팡이 아래, 광야 뒤편, 애굽의 지하 감옥, 아둘람의 굴들, 아라비아의 곤경, 그리고 뒤로 밀려나 조용히 홀로 지내는 자리 외에 어디서 이것을 배울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많은 백성이 그곳으로 가서 다음 말씀을 배우기까지 머물도록 정하셨다. …내게 배우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영혼이 쉼을 얻으리라 –마태복음 11:29. 분명히 그곳에서 모세는 성경을 연구하는 이들이 지상에서 살아간 가장 온유한 사람으로 아는 그 성품을 얻었다. 분명 고난의 학교만큼 그것을 배우기에 정반대로 보이는 곳도 이 땅에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도 여기에 머물러 …그분과 그 부활의 능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고자 한다 –빌립보서 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