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NANT 잡지

교회 이야기

교회와 하나님 나라

원문 발행호The Heartbeat of The Remnant · 2021년 봄 · 권 25 · 호수 1
노을 진 하늘을 배경으로 한 교회의 실루엣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가 확신에 차서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16)라고 고백한 것을 두고 그에게 복을 선언하셨을 때, 신약의 두 가지 큰 주제인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마태복음 16:18-19). 그때부터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여러 의견을 내놓으며 하나님 나라의 의미와 본질, 그리고 교회와의 관계를 숙고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시며 전파를 시작하셨습니다(마태복음 4:17 참조). 복음서 전반에서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하나로 묶는 주제였습니다. 실제로 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언급하신 일이 두 번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 교회는 사도행전과 서신서, 요한계시록에서 더 두드러집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강조하신 것과 사도들의 가르침 사이에 어떤 충돌이나 양립할 수 없는 긴장이 있는 것일까요?

최근 몇 년 동안 복음주의권뿐 아니라 보수 아나뱁티스트권에서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과 언급이 늘어난 듯합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기,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하나님 나라를 성장시키기, 하나님 나라를 섬기기, 하나님 나라의 재정, 심지어 하나님 나라에 자금을 대기와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나님 나라 신학을 학습 과정으로 제공하기도 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특정 부류의 그리스도인을 구분하기 위해 ‘하나님 나라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많은 보수 아나뱁티스트들 사이에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용어가 엘리자 휴잇이 쓴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하여 우리의 목소리를 울리자”라는 찬송의 표현을 사실상 압도해 버렸습니다.

일부 아나뱁티스트들 사이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조가 새롭게 높아진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으며, 그 가운데 두 가지가 두드러집니다. 이 두 가지 우려에는 모두 보수 아나뱁티스트 전통 밖의 그리스도인들이 끼친 영향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성경을 믿고 거듭났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1. 첫째, 어떤 사람들은 성경적이 되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을 덜 중요하게 여기는 듯합니다. 우리 보수 아나뱁티스트들은 성경에 근거하여 모든 올바른 교리와 입장을 세울 수 있지만, 살아 있는 관계 안에서 연합되어 있다고 고백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가치를 삶으로 드러내는 데에는 미치지 못할 수 있습니다.
  2. 둘째는 구원받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구원받은 삶을 사는 것, 곧 순종하는 제자도의 삶, 특히 우리가 따라야 할 예수님의 바로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보수 아나뱁티스트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한다고 고백하지만, 우리도 부주의한 제자도에 빠질 수 있습니다.

보수 아나뱁티즘 안에서 이러한 우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느 정도 대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믿기는 하지만 바울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복음주의자들은 특히 그리스도의 어려운 가르침과 관련하여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의 삶보다 올바른 성경 해석, 신학 체계, 올바른 믿음에 대한 동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 아나뱁티스트들은 예수님께서 시작하셨고 그분의 가르침의 주제였던 하나님 나라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복음서(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신약의 나머지 부분을 해석하는 데 우선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 점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포괄적인 일반화는 예외와 단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지만, 이러한 우려에는 타당성이 있으며 복음주의 친구들에 대한 이 비판에도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뿌리는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사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종교개혁의 불균형한 강조, 그리고 존 칼뱅의 활동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 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해독제가 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리스도는 신약뿐 아니라 사실 성경 전체를 해석하는 데 중심이십니다. 또한 흔히 간과되지만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교회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강조하는 데에도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해독제를 아무런 유보 없이 받아들이는 데에는 세 가지 주의점 또는 비판점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복음서가 나머지 성경을 지배하는가?

첫째, 복음서(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가 신약 성경 해석을 지배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전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신약은 복음서와 사도행전, 서신서,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을 거치며 더 충만한 계시와 교리적 설명으로 나아가는 신적으로 영감된 발전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성령의 오심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복음서 뒤에 나오는 신약의 책들은 이 말씀의 예고된 성취입니다. 이 책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역을 온전히 전개하고 이해하도록 해 줍니다.

그리스도의 사역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은 터를 닦았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은 그분께서 교회를 세우실 토대를 놓았습니다. 복음서 뒤에 이어지는 성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와, 믿음과 순종을 통해 그 죽음이 우리와 맺는 관계 및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해 줍니다. 또한 교회에 관한 교리 전체를 발전시킵니다. 그러므로 신약 전체는 아름다운 조화를 이룹니다. 복음서와 서신서는 서로를 참고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서신서보다 우선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서신서는 복음서를 해석하는 데 도움을 주며,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원리를 더 온전히 이해하고 실제로 적용하도록 해 줍니다.

신학은 제자도와 대립하는가?

둘째, 올바른 해석과 올바른 실천을 서로 대립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신학을 제자도와 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일부 복음주의자들이 제자도를 희생하면서까지 신학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 있다고 해서, 신학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신학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성경 구절을 다른 성경 구절과 비교하여 여러 부분에 대한 통일되고 조화로운 이해에 이르려 할 때, 우리는 개인적인 신학을 형성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잘 표현할 수 있든 그렇지 않든 말입니다. 우리의 신학(또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면 교리에 대한 이해)은 우리의 믿음 체계이며, 그 토양에서 우리의 행동이 자라납니다. 어떤 신학은 매우 기초적이고, 어떤 신학은 평생의 연구를 반영합니다. 대부분은 불완전하고, 어떤 것은 일관성이 없으며, 또 어떤 것은 독단적이거나 철학의 영향을 짙게 받았고, 일부는 몹시 잘못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해 점점 더 자라고 더욱 정확한 이해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분의 말씀 및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이해의 총합인 우리의 신학은 제자도, 곧 하나님과 함께하는 매일의 삶에 영향을 미치므로, 이는 꼭 필요합니다. 좋은 신학은 제자도를 뒷받침합니다. 빈약한 신학은 제자도를 약화시킵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는 서로 바꾸어 쓸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올바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는 어떤 관계일까요? 현대의 용법은 거의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게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가리키는 포괄적인 표현이나 교회를 대신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 또는 다스림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시작된 현재의 실재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세상 끝에 완성하실 미래의 소망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자체는 아니지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이들, 곧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한 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정확히 표현할 말을 찾는 일은 어렵지만, 거룩하고 사랑이 있으며 순종하는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이 땅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통치, 곧 그분의 나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내 나라를 세우리라”고 하지 않으시고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하나님 나라 회관을 세운 것이 아니라 교회들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시각을 품은 나머지, 지역 교회 공동체 안에서 동료 신자들과 함께 이 땅에서 살아가는 힘겨운 일과 하나님 나라를 분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높이고 교회를 낮출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과 가르침, 하나님 나라의 성장,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한 집회에 열광하면서도, 정작 자기 지역 교회에서는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며 한심한 교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으십니까(골로새서 4:11 참조)? 그렇다면 온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헌신하십시오. 그 헌신은 여러분의 지역 교회에서 시작됩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십시오. 교회 안에서 책임을 맡으십시오. 지역 교회에 책임을 지고 충성하십시오. 교회, 곧 여러분의 지역 교회와 그 너머에 있는 교회의 유익과 성장을 위해 일하십시오.

티모시 드와이트는 이렇게 썼습니다:*

주님, 주의 나라를 사랑합니다,
주께서 거하시는 집을,
우리 복된 구주께서
귀한 피로 구원하신 교회를.
오 하나님, 주의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 성벽이 주 앞에 서 있고,
주의 눈동자처럼 귀하며,
주의 손에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정확한 관계에 대해 그가 말한 바는 제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새겨 두었으면 하는 점은 그가 하나님 나라를 생각할 때 교회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그가 이어서 쓰는 말처럼, 그의 말이 여러분의 말이기도 합니까?

교회를 위해 눈물 흘리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염려와 수고를 교회에 바치리니,
수고와 염려가 끝날 때까지.
가장 큰 기쁨보다도
교회의 하늘에 속한 길을 귀히 여기며,
교회의 달콤한 교제와 엄숙한 서약,
사랑과 찬양의 찬송을 귀히 여깁니다.

* 노래 전문은 32쪽을 참조하십시오.

머그잔과 빵 옆에 펼쳐 놓은 성경
  • 노을 진 하늘을 배경으로 한 교회의 실루엣 · publicdomainpictures.net
  • 머그잔과 빵 옆에 펼쳐 놓은 성경 · Andrew Schwartz

잡지 출처

교회와 하나님 나라. by Wendell Heatwole Olar, SC. The Heartbeat of The Remnant, 2021년 봄 · 권 25 · 호수 1. 원문 쪽수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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