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가 하나님과 맺게 되는 관계에 관하여, 신약성경에 이보다 더 놀랍고 심오한 말씀이 있을까 하고 때때로 생각합니다. 참으로 이것은 우리의 모든 생각이 빠져드는 바다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주제에 다가가 그곳에서 비치는 빛의 섬광을 얼마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하며 신중하게 묵상하고 나서도, 그 주제는 여전히 우리의 이해를 넘어 펼쳐져 우리의 생각을 당혹스럽게 하고, 이 땅의 보잘것없는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으며, 마침내 아버지의 집의 언어와 빛으로 온전히 드러날 때를 기다립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관계를 나타내는 말에 강조점이 놓입니다. 가장 놀라운 선언은 바로 사귐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얼마나 다르게 생각하는지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 자체를 미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노예와 같은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그저 복종해야 할 왕으로만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영광은 우리가 새로운 관계, 곧 사귐의 관계로 들어가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모든 적대감은 마음에서 사라지고, 자녀가 사랑으로 품는 경외심을 제외한 모든 두려움은 영원히 쓸려 갑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귐”이라는 그 위대한 말이 나타내는 더욱 깊고, 더욱 놀라우며, 더욱 친밀한 관계로 들어갑니다.
하나님과의 우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하려는 시도조차 우리가 시작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친구”라는 말은 우리 언어에서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말 가운데 하나이며, 안타깝게도 몹시 남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는 사람과 친구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는 이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세상에서 참된 친구는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인생의 여정과 길을 가면서 참으로 많은 친구를 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완전히 안심할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몇이나 됩니까? 혼자 앉아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 비천한 것뿐 아니라 고귀한 것까지, 의심뿐 아니라 확신까지 털어놓을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몇이나 됩니까? 그런 사람은 아주, 아주 드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정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런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알고 그 진리를 깨닫기만 한다면, 우리는 함께 우정이라는 바로 그 뜻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을 막아 두고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 저는 완전히 안심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젊은 신자 여러분, 이것을 깨달으셨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누리는 삶의 가장 귀한 것들 가운데 하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가장 깊고 심오한 복 가운데 하나를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서 위선적인 말을 결코 듣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마음은 뜨겁고 불안하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가혹하게 대하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순복했다고 말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생각될 때에는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비천함과 옹졸함과 천함, 의심과 두려움 등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귀에 쏟아 놓을 용기를 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아, 저는 그렇게 하기가 두렵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부족함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말씀드리는 것들을 가려내시고, 합당하지 않은 것은 날려 보내시며 가장 좋은 것은 남겨 두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드라이든의 시 「모든 것은 사랑을 위하여」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그토록 뒤섞여 있었네.
서로 만나는 시냇물처럼,
우리 둘 다 자기 자신을 잃었네.
우리는 하나의 덩어리였고,
주고받을 수 없었네,
같은 것에서가 아니면.
그는 나였고, 나는 그였으므로.”
그것이 우정의 완성이며, “사귐”이라는 말의 가장 깊은 속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드리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제게 주신 것처럼 하나님 자신만을 그분께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제게 주십니다. 무엇을 주실까요?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자아를 제게 주십니다. 두 시냇물이 하나로 합쳐지듯,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혼의 생명과 하나님의 무한한 생명이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그리하여 저의 모든 연약함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힘을 얻고, 하나님의 모든 능력은 저의 연약함을 따라 자신을 표현할 길을 찾습니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실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습니까? 우정을 실천하고 사귐을 실천하는 일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과 맺는 우정이라는 위대한 사실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모든 삶에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실천할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위험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 이렇게 분주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열병처럼 들뜬 시대라니요! 우리는 일의 분주함에 휩쓸려 중심을 잃습니다. 날마다 떠밀려 다니고, 혼탁한 시냇물처럼 요동치며 흘러갑니다. 쉼도 없고, 사귐을 실천하지도 않으며, 그럴 시간도 없습니다. 다른 모든 일에는 시간을 내면서도 이 일에는 시간을 내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다른 모든 일도 약해집니다. 먼저 하나님과 이야기할 시간을 내십시오. 그리고 둘째로—첫째보다 더 소홀히 여겨지는 일입니다—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시간을 내십시오. 첫째를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과 이야기할 시간을 내십시오. ‘기도하라’고 말해도 옳겠지만, 우리는 ‘기도’라는 말을 간구와 너무 많이 연관시켜 왔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구하느라 바빴습니다. 하나님께 이야기하십시오. 자신의 삶과 가정과 자녀에 관해 모두 말씀드리십시오. 원한다면 필요한 것을 구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과 더 가까이 교제하며 살수록 기도에서 간구는 줄어들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야기하는 법을 익히십시오. 모든 것을 말씀드린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시간을 내십시오.
이 메시지가 교회의 모든 활동 가운데 잠시 멈추게 하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귐을 실천하는 자리로 돌아오게 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귐은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그 사실을 만들어 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안에서 저는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제가 그 사실을 실천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영혼이 하나님을 기다리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일을 실천하기 시작하면, 그 영혼은 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그리스도의 임재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