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전통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교회 묘지의 오래된 묘비처럼 교회 곳곳에 놓여 있습니다. 썩고 부서져 가지만, 너무 많은 기억이 담겨 있어 언덕 너머 어딘가에 그냥 내다 버리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전통은 어떨까요? 묘지 가장자리 울타리를 따라 자란 충실한 사과나무처럼, ... 전통처럼 규칙적으로 열매를 맺어 영혼에 거듭 복을 줍니다.
무너져 가는 묘비를 살아 있는 사과나무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여기서 제 비유는 다소 힘을 잃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 오래되고 죽었으며 메마른 전통을 결코 되살릴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그들은 수년 동안 죽고 메마르고 공허하며 악취가 나기 시작한 전통을 경험해 왔고, 교회 생활이 지난 여러 세기의 묘비들로 막혀 있으면 결코 번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 함께 이치를 따져 봅시다. 문제는 전통일까요? 아니면 죽음일까요?
몇 년 전, 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 놓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저는 특정 요일에 금식하는 전통을 지킨 교회들(예를 들어 초대 교회와 초기 감리교회)과 개별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얼마나 형식적일까.” 저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금식 같은 영적 훈련이 매주 전통이 되다니요?
제 눈에는 교회 묘지에 놓인 퀴퀴하고 부서져 가는 묘비들만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주님께서는 전통적인 모든 것에 대한 제 의심에서 저를 구해 준 진리를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전통은 우리가 어떤 것으로 만들어 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해진 요일에 일주일에 한 번 금식하는 일은 묘비가 될 수도, 사과나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전통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난 뒤, 저는 특정 요일에 일주일에 한 번 금식하는 오래된 전통을 다시 시작했습니다(기독교 초기 몇 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주 오래된 전통입니다).
그것은 충실한 오래된 사과나무처럼 제게 많은 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전통은 살아났습니다!
물론 제가 그 전통을 묘비로 바꾸는 일은 쉬울 것입니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 해서 그 일을 하기 시작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제가 그 전통을 살아 있게 지켜 온 한,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덧붙이자면, 일정상의 문제 때문에 시작한 뒤로 늘 꾸준히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무거운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여러 해 동안 사람들이 종교 개혁가와 같은 열정으로 전통에 맞서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때로는 그렇습니다. 전통이 사라져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전통이 사라진다고 해서 누구에게 해가 될 일은 분명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전통인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 사실 아마 대부분의 경우에 전통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버려진 묘지처럼 죽은 마음으로 전통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온 마음을 노래에 맞추어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성가가 살아납니다! 형제에게 거룩함과 사랑을 다해 거룩한 입맞춤을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것이 살아납니다! 사랑을 듬뿍 담아 실천하면서 “애찬”이라는 옛 관습을 되살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것이 살아납니다!
전통에 반발할 때도, 전통을 지킬 때도 신중합시다.
교회의 전통은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해야 해서 하면 죽은 전통입니다. 하고 싶어서 하면 평생 이어지는 살아 있는 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