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NANT 잡지

편집자의 글

편집자 글

원문 발행호The Heartbeat of The Remnant · 2021년 봄 · 권 25 · 호수 1

모든 분께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문안드립니다. 지난 한 해 반 동안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러저러한 면에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이루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2-4.

여러분 각자가 어떤 일을 겪었든, 여러분의 내면의 동기가 사도 바울의 말에 담긴 마음과 같으리라 믿습니다. … 나는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과 모든 형편에서 배부르며 배고프며 풍부하며 궁핍하게 되는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1-13.

또 한 해가 벌써 거의 절반이나 지나간 지금, 시간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많은 사람에게 지난 16~18개월은 꽤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그 여파가 한때 정상이라고 여겨졌던 모든 것을 계속 뒤흔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여파 중 일부가 잡지 이번 호를 제때 발행하는 데 지장을 주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이제 일이 정상 궤도로 돌아와 앞으로 몇 달 안에 다음 호를 발행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로써 다시 평소 일정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팬데믹과 그로 인한 여파가 하나의 큰 교통 체증과 매우 비슷하다고 봅니다. 처음에는 여러 차량이 제한 속도로 순조롭게 달립니다. 점차 더 많은 차량이 흐름에 합류하면서 고속도로가 상당히 혼잡해집니다. 그래도 흐름은 계속 막힘없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한 차량이 도로 위의 잔해를 피하려고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방향을 틉니다. 곧바로 파급 효과, 또는 도미노 효과가 나타나 각 차량이 앞차와 충돌하지 않으려고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교통이 거의 기어가듯 느려지고, 1마일 또는 그 이상 구간에서 차가 섰다 가다를 반복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각 차량이 마침내 문제의 물체를 지나고 나면 다시 이전 속도로 가속할 수 있습니다.

지역 경제든 세계 경제든, 우리 세계의 경제에서도 같은 일이 훨씬, 훨씬 더 큰 규모로 일어난 듯합니다. 먼저 지역과 국가 차원의 봉쇄가 있었고, 그로 인해 기업들은 생산과 판매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그다음 기업들이 다시 문을 열고 노동자들이 병에 걸리기 시작하면서 생산은 더욱 감소했습니다. 갑자기 많은 제조업체가 보유 재고가 부족한 상황에 놓였고, 이는 수요를 공급할 능력마저 부족한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 세계의 많은 기업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교역을 발전시켜 온 탓에, 제조업체들이 “해외에 있는 회사”가 세계 수요를 충족할 만큼 충분한 공급량을 다시 갖추기를 기다리는 동안 판매할 수 없는 제품이 많습니다. 최근에 생긴 또 다른 문제는 세계적 차원에서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 크게 벌어지면서 많은 제품의 구매 비용이 급등했고, 일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세계적 위기에 대한 우려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어디에 놓여 있습니까? “우리 영혼의 원수”가 이 세계적 사건을 이용하여 곳곳의 교회가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겪게 한 듯합니다. 제 책장에는 교회사를 다룬 『위기에 처한 양심』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특히 식민지 시대 미국의 “평화교회”들이 겪은 어려움을 살펴봅니다. 이 책이 주목하는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는 당시의 세계적 사건들이 그들의 신앙과 실천의 근간을 뒤흔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교회들의 공동 양심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했고, 많은 개인은 그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신앙을 포기했고, 어떤 이들은 교회에 다니기를 그만두었으며, 어떤 이들은 자기 교회를 떠나 더욱 세속적인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남아 있던 사람들도 다시 안정된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여러 문제를 겪으며 상당한 어려움을 치렀습니다.

우리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관점’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제가 사용하는 정의는 무언가를 대하는 특정한 태도나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 즉 견해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눈앞에 쓴 안경의 도수와 같아서, 사물을 왜곡되게 보게 하거나 시력이 20/20인 것처럼 선명하게 보게 합니다. 또는 컴퓨터나 차량 엔진에서 필터를 사용하는 것과 같아서, 미리 정해 둔 기준에 따라 허용되어야 할 것만 통과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점은 필터나 안경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의 관점은 여러 가지에 의해 형성됩니다. 어린 시절 받은 훈련, 성장기에 따르기로 선택한 본보기, 우리가 흡수한 읽을거리, 마음을 열고 받아들인 영적 멘토들, 그리고 평생 동안 가까이한 동료들이 그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관점은 상황을 바라보는 방식,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방식, 죄와 구원을 보는 방식, 친구와 원수 모두에게 반응하는 방식을 결정합니다.

하얀 꽃 위에 앉은 벌

오늘날 우리 세계에는 우리의 충성을 얻으려 다투는 여러 관점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대의를 지지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특수 이익” 단체도 많습니다. 이 사안의 양쪽 모두에 인종 차별이 있습니다. 투표권, 선거 결과의 정직성, 사법 제도와 헌법에 바라는 입법적 변화와 관련하여 반대자들에 맞서 지지와 우위를 얻으려 “부당하다”고 외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어떤 사안이든 늘 여러 입장이 있었지만, 대체로 모두의 유익을 위해 협력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사안이 사람들을 두 진영으로 양극화할 만큼 심하게 분열시키는 듯합니다. 정부의 권력 균형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오락가락해 왔습니다. 이러한 양극화는 원망과 분노를 키우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폭력과 기물 파손으로 분출되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평소 침착한 사람들마저 자제력을 잃고, 그 사람답지 않은 성급하고 반사적인 결정을 내리게 했습니다.

이 모든 혼란과 혼돈 속에서 교회로서 우리의 관점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이 우리의 관점을 빚고 형성하여 그분의 관점과 일치하도록 계속 굳게 서 있습니까? 아니면 한 집단 또는 다른 집단의 압력에 굴복하여 나그네와 순례자로서 걷는 우리의 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까?

세계 다른 지역의 일부 교회가 함께 모여 교제하고 예배하지 말라는 지방 정부의 압력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장기간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를 두라는 정부의 지침에 양심상 순종하기로 선택한 가정들도 있습니다. 낙심한 개인들이 생겼습니다. 고립된 가정들도 생겼습니다. 형제들 사이의 평화를 유지하려 애쓰면서 교회들은 이 문제 저 문제를 겪어 왔습니다.

정기적으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 “쇠퇴하는” 교회나 “연로한” 교회, 또는 “작은 시골”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보수적인 아나뱁티스트 성향의 교회들에 대해 그들이 증언하는 이야기를 여러 가지 듣게 됩니다. 이들은 우리가 평소에도, 비극이 닥쳤을 때에도 서로 돕는 모습에 감탄합니다. 우리 결혼식의 규모, 특히 장례식의 규모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온순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계속해서 어려움을 맞이할 때 주의를 기울이고 지혜롭게 행동합시다. 제한된 제 시각에서 볼 때, 성경이 가르친다고 우리가 이해하는 정상적인 예배를 희생하면서까지 장기간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 결국 믿는 우리에게 부정적인 파급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해 전, 제가 “상담 모델”을 배우는 데 참여했을 때, 누군가가 (비유적으로) “가면”을 쓰고 있다면 대인 관계에 상당히 문제가 되고 해롭다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문자 그대로) “가면”을 쓴 채 지내는 것이 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을 평가하고 생각해 본 결과, 저는 그것이 대인 관계에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큰 해를 끼칠 것이라고 믿습니다. 믿음의 형제자매와 얼굴 전체를 볼 수 있는 상태로 대화할 때에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짓과 얼굴 표정을 읽으며, 이는 서로 의사소통을 할 때 생각을 이해하고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지역 교회 공동체가 장기간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를 두면 결국 영적 생명과 열정의 수준이 저하되어, 언젠가는 그 지역 공동체가 주변의 다른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과 더는 구별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영적 싸움을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의 아버지와 구주와 영원한 본향에 시선을 늘 고정합시다.

커빈 L. 웽거

  • 하얀 꽃 위에 앉은 벌 · Unsplash.com

잡지 출처

편집자 글. Curvin L Wenger. The Heartbeat of The Remnant, 2021년 봄 · 권 25 · 호수 1. 원문 쪽수 3,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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