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열네 살이고, 곧 열다섯 살이 됩니다. 열다섯 살짜리 아이가 겪기에는 너무나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처음부터 말씀드릴게요. 저는 1988년 12월 29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아주아주 젊은 부모님인 론과 셸리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빠는 술을 많이 마셨고 씹는 담배를 씹으셨습니다. 늘 일하셨고, 언니 아만다와 제가 깨어 있을 때는 집에 거의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빠는 엄마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신화 속 존재 같았습니다.
자라면서 아빠를 점점 더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제 눈에 아빠는 슈퍼맨이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완벽했지요. 아빠가 화를 내면 제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자라면서 아빠가 정말 완벽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거의 늘 화가 난 채 집에 돌아오셨는데, 제가 곁에 있어서 아빠를 화나게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아빠에게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습니다. 그때는 그 냄새가 술 냄새인 줄 몰랐고, 그저 정상적인 냄새가 아니라는 것만 알았습니다. 제 ‘슈퍼맨’은 괴물로 변해 가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밤에 차를 몰고 들어오면 엄마는 우리를 방으로 보내고, 그날 밤 괜찮을지 아닐지를 판단하곤 했습니다. 나쁜 밤이면 불을 끄고 이불 속에 숨은 채 어린 동생들과 침대에 바짝 모여 앉아, 아빠가 엄마에게 고함치고 욕하는 소리를 듣던 일이 기억납니다.
아빠가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는 가족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빠 어깨에 올라타 천장을 만지려고 달려가 안아 올려 달라고 하던 일, 아빠가 양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려 주던 일, 아빠 무릎에 앉아 책을 읽어 주시는 이야기를 듣던 일, 뒤뜰에서 술래잡기를 하던 일, 현관에서 함께 탄 핫도그를 먹던 일은 소중한 추억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밤에는 여전히 이불 속에서 불안하게 기다렸습니다.
제가 일곱 살, 아만다가 여덟 살, 남동생 로니가 여섯 살, 여동생 홀리와 레베카가 각각 네 살과 세 살이었을 때 우리는 오마하를 떠났습니다. 아빠는 계속 오마하에서 일하셨고, 술은 더 심해졌습니다. 차로 한 시간 거리였는데, 집에 오는 길에 맥주 여섯 캔을 다 비울 수도 있었습니다. 술 때문에 아빠와 우리의 관계는 계속 나빠졌습니다. 이제는 술을 마시는 것이 잘못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아빠와 차를 타고 갈 때면 곁눈질로 트럭 안에서 병에 든 무언가를 마시는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한 번은 트럭 뒤에 맥주가 왜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빠는 대답하지 않으셨지만 엄마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게 하셨습니다. 엄마도 이미 알고 계셨을 거라고 확신하지만, 사탄은 어린 제 마음을 비틀어 제가 절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크고 끔찍한 비밀을 갖고 있다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두려워서 엄마와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가족의 긴장에 더해, 저는 로니에게 심한 경쟁심을 느꼈습니다. 아빠의 관심과 칭찬을 두고 로니가 제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남몰래, 또 자주 로니를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열 살이나 열한 살쯤 되었을 때 우리는 슬픈 애증 관계였습니다. 어떤 날은 함께 놀며 신나게 지내다가, 다음 날이면 미친개처럼 끊임없이 서로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열한 살쯤 되었을 때 자살 충동과 씨름하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전에는 그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는데, 갑자기 자살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 무렵 엄마는 어쩌다가 Charity 테이프를 알게 되셨습니다. 거의 늘 그 테이프를 듣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경건한 가정’ 시리즈가 싫었습니다. 전에는 엄마가 소리를 지르거나 그런 식으로 하셨는데, 이제는 우리를 매질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엄마가 아빠와 늘 말다툼하던 것을 그만두자 아빠는 오히려 더 화를 내셨습니다. 아빠는 테이프 하나만 듣고는 아주 오랫동안 다른 테이프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엄마는 머리를 가리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우리가 더는 바지를 입지 않기로 정하셨습니다. (아빠는 기독교인처럼 보이는 겉모습을 계속 유지하셨습니다. 그게 아빠에게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기독교’ 목공소에서 일하셨습니다.) 그 일은 제 삶을 크게 뒤흔들었습니다. 데니 케너스톤 형제가 누구든, 저는 그가 지독한 악인이자 제 최대의 적이며 절대로 제 ‘형제’가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그’ 때문에 제 삶은 정말 비참해졌습니다. 저는 늘 또래의 인정에 지나치게 의존했고, ‘잘나가는’ 무리에 받아들여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무리의 누구도 괴짜와 어울리려 하지 않았고, 그래서 어린 나이에 냉소적이고 쓰라린 마음을 품은 교만한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자라서 세상에 진짜 제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꿈꿨습니다. 록 스타나 영화배우, 아니면 CIA 요원이 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 같은 해 늦게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너희 여자아이들은 이제 엄마처럼 머리 가리개를 쓰기 시작할 거야.”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그 데니 케너스톤에게 너무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우리에게 반대할 점이 있느냐고 물으셨을 때 저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반대해 봐야 상황만 나빠진다는 걸 오래전에 배웠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마음속으로 반항했습니다. 옷으로 제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치마는 입어도 되었으므로, 허락되는 한 가장 짧고 몸에 딱 붙는 치마와 상의를 입었습니다. 그 ‘흰 것’을 순전히 유행을 위한 장식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여자아이 몇 명은 제 ‘모자’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습니다. 아빠가 로니를 사랑하시는 것만큼 저도 사랑해 주시게 하려는 노력을 그때쯤 그만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빠와 로니 모두와 계속 대립했습니다.
카운슬블러프스 도서관에는 직접 대출하는 무인 대출대가 있었고, 저는 부모님이 분명 허락하지 않으셨을 책을 많이 빌리는 데 그걸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저만의 목록을 따로 만들었고, 연체한 책이 한 권도 없어서 엄마가 그 목록을 볼 일이 없게 했습니다. 유령 이야기, 십 대 연애소설, 추리소설 등을 수없이 읽었습니다. 아빠가 금지하신 전쟁 소설도 몰래 읽었고, J. 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도 읽었습니다(참고로 순전히 주술입니다!). 이런 기만은 부모님과 저 사이의 골을 더 깊게 만들고 제 양심을 망가뜨렸습니다. 들키지만 않으면 무엇을 읽든 상관없었습니다. 신경 썼어야 했습니다. 제 삶은 악마의 활동에 활짝 열려 있었으니까요.
저는 ‘기독교’ 음악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마이클 W. 스미스, 레이 볼츠, 샌디 패티, 포인트 오브 그레이스, 시에라 등이었습니다. 라디오를 거의 끊임없이 들었습니다. 그게 제 삶의 현실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면 그저 행복해질 수 있었고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졌습니다. 잠에서 깨면 라디오를 켰습니다. 물론 ‘기독교’ 방송국이었지요. 잠자리에 들 때는 라디오를 껐습니다.
저는 침묵이 두려웠고, 특히 밤에는 더 그랬습니다. 평생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언제나 어둠을 무서워했습니다. 곁눈질로 벽에 어둡고 형체 없는 얼룩들이 보였고, 똑바로 바라보면 휙 사라졌습니다. 악과 음울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느낌이 늘 있었습니다.
저는 변장의 달인이었습니다. 제가 원하지 않으면 아무도 제가 속상한지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제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알코올 중독자이고, 한때 다른 여자 때문에 엄마를 실제로 떠났으며, 게다가 그 사람이 우리 작은 가정교회의 설교자라는 걸 알면 친구들이 저를 버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평범한’ 옷을 입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습니다. 친구들은 그 점은 눈감아 주었고 우리는 꽤 친하게 지냈지만, 제 삶의 다른 일들은요? 그들에게 말하는 게 죽도록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것을 속에 꾹 눌러 담고 코르크를 최대한 세게 막았습니다. 위산 역류가 자주 생기고, 쉽게 울거나 화를 냈습니다. 대개는 그냥 두꺼운 껍질 속으로 기어들어 가 혼자 있거나 여자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올바른 옷을 입고 머리 가리개를 쓰고 “예”라고 공손히 대답하며 순종했습니다. 말대꾸하지 않았고, 아프지 않은 한 매주 일요일 빠짐없이 교회에 갔습니다. 누가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면 웃으며 “아, 아주 잘 지내요!”라고 말했습니다. 성적도 좋았고 친구도 쉽게 사귀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완전히 속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멋진 삶을 사는, 아주 행복한 열세 살 소녀라고 믿었습니다. 아니면 그들이 속았다고 제가 스스로를 속인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아빠는 제 친구가 되려고 하셨고 엄마는 여자 친구들 중 한 명처럼 되려 하셨습니다. 아만다는 제게 정말 이상하게 굴었습니다. 제가 삶에 대해 불평할 때마다 설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니는 전에는 맞서 싸우기만 했는데 이제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모두 저를 정말 못된 사람처럼 느끼게 했습니다. 아빠는 자신이 ‘구원받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술을 끊으셨습니다. 그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술을 마시려는 욕구 자체를 없애 주시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아빠가 ‘간증’이라고 부른 말을 저는 단 한 번도 믿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아빠를 사랑했지만 믿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빠를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전에도 ‘끊었다’고 하셨지만 맹세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다시 마시기 시작했고, 전보다 더 심해졌습니다.
데니 형제는 제가 알던 삶에 더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아빠가 테이프 하나를 들으셨습니다(정말 놀랍게도!). 가정예배에 관한 테이프였습니다. 아빠는 밤마다 가정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제게는 순전히 고문이었습니다. 대개는 열심히 듣는 척하면서 멍하니 있었지만, 누가 전날 가정예배 내용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다면 “음……” 같은 말밖에 못 했을 겁니다. 아빠가 그만 말씀하시도록 어서 잠자리에 들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지난 한 해 동안 제 삶은 더 나빠졌습니다. 엄마는 오랫동안 제 옷차림을 바꾸게 하려 하셨고, 아미시풍 케이프 원피스도 몇 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입긴 했습니다. 밖에서 정원 일을 할 때요.
기억이 조금 흐릿하지만, 어느 날 아침 엄마에게 화가 났습니다. 제가 소리를 지르고 할 말을 다 한 뒤 엄마가 저와 이야기하려 하셨지만, 저는 싫다고 했습니다.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가 방으로 가서 문을 쾅 닫았습니다. 테이프를 틀고 음량을 엄청나게 높인 다음 침대로 뛰어들어 씩씩거렸습니다.
테이프를 건성으로 들으며 화가 나고 자기 연민에 빠져 누워 있던 저는 더는 견딜 수 없고, 견디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집을 나가기로 했습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서둘러 옷을 입고 머리를 뒤로 빗어 포니테일로 묶은 뒤 머리 가리개를 바닥에 던졌습니다. 스테레오 음량을 더 높이고 문을 열었습니다. 방충망이 없는 창문을 조심스레 열고 현관 지붕으로 기어 나갔습니다. 창문에서 떠나 집 모퉁이를 돌아 달렸습니다. 지붕 끝으로 몸을 낮춰 내려가 어지러울 만큼 아래를 내려다봤습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뛰어내렸습니다. 무릎이 꺾이며 턱을 세게 쳤고 안경이 벗겨졌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거실 창문으로 누가 저를 보지 않기를 바라며 장작더미로 달려갔고, 헛간 뒤로 달려가 옥수수밭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울며 달렸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무서웠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제 힘보다 강한 무언가에 이끌리고 있었습니다. ‘가야 해, 도망쳐야 해, 뛰어, 뛰어, 뛰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맥박치듯 울렸고, 제 목소리로 미친 듯이 뒤섞여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그렇게 달리다가 우리 집 진입로에서 약 4분의 1마일 떨어진 비포장도로에 이르렀습니다. 울타리를 넘어 뛰어내려 진흙에 조금 미끄러진 다음 걷기 시작했습니다.
자갈길을 30분 동안 걸으면서 조금은 진정되고 자신을 통제하는 듯했지만, 여전히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도랑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누군가 한 번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지만, 저는 계속 고집스럽게 나아갔습니다.
얼마 후 큰길에 도착했습니다. 오마하 쪽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오클랜드 쪽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엄마가 직장에 있는 아빠에게 전화했다면 아빠가 집으로 오는 중일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분명 전화했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그 큰길을 약 두 시간 동안 걸었습니다. 한 번은 집에 전화해서 저를 찾으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할까 생각했지만, 낯선 사람 집에 들러 전화를 빌리는 것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아빠와 로니가 저를 찾았을 때는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 일은 바로 그해 봄에 있었습니다. 7월 중순이 되자 저는 다시 집을 나갈 마음이 단단히 들어 있었습니다. 한 번 가출하고 나서 엄마와 아빠는 제가 누리던 자유를 거의 모두 빼앗았습니다. 전화는 누군가 저에게 걸어 왔을 때만, 그것도 5분 동안만 할 수 있었습니다. 컴퓨터를 쓸 시간, 부모님 없이 친구들과 보낼 시간, 방에서 지낼 시간도 없어졌고 아빠는 제 스테레오를 압수하셨습니다. 저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제 자신에게도 화가 났고, 제 ‘삶’을 빼앗은 부모님에게도 화가 났습니다. 순전히 반항심에서, 기독교 음악이 부모님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다른 음악을 듣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라디오 알람시계를 이용해 세속적인 록, 펑크, 팝, 랩 음악을 틀었습니다. 환멸에 빠진 제 생각으로는 부모님이 당해도 싼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살고 있고 저는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할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와 저는 그날 제가 입은 옷 때문에 크게 다퉜습니다. 치마였지만 세속적인 느낌이 강했습니다. 쇼핑몰이나 공립학교에 들어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원한 모습이 정확히 그런 모습이었고, 엄마와 아빠가 원하지 않는 모습도 정확히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걸 원했습니다. 아빠가 집에 오시자 엄마가 아빠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아빠는 저를 앉혀 놓고 검은 큰 쓰레기봉투를 가져다가 제가 가진 상하의 분리형 옷들을 모두 넣고 트럭에 실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거의 울 뻔했지만 곧 이를 악물고 봉투를 가지러 성큼성큼 갔습니다. 계단을 올라가 맨 위 서랍을 열어젖히고 스웨터, 터틀넥, 티셔츠, 단추 달린 셔츠를 마구 꺼내 바닥에 던졌습니다. 옷을 봉투에 쑤셔 넣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트럭에 실은 뒤 다시 들어와 봉투를 하나 더 가져왔습니다. 다른 서랍과 옷장도 똑같이 했습니다. 그날 밤 마침내 잠자리에 들었을 때 제 방에서 뭔가 빠졌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알아차리는 데는 잠깐이면 충분했습니다. 아빠가 제 CD와 테이프, 스물다섯 개나 서른 개쯤 되는 것들을 모두 가져가셨고 알람시계도 가져가셨습니다. 음악이 어디 있느냐고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아빠는 아주 차분하게 자신이 가져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즉시 데니 형제의 또 다른 테이프 때문이라고 의심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들을 수 있는 게 그 끔찍한 회중 찬송 테이프뿐인 것은 아빠와 데니 탓이었습니다. 저는 그 테이프들이 정말 지긋지긋했습니다.
저는 다시 가출할 계획을 진지하게 세우고 있었습니다. 악몽 때문에 밤마다 자주 잠에서 깼고, 레깅스와 터틀넥 한 벌을 나갈 준비로 챙겨 두기로 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잠들어 있고 밤이 너무 늦지 않아 충분히 멀리 달아날 시간을 벌 수 있다면, 밖으로 살며시 나가 옷을 갈아입고 사라질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높으신 분께 더 나은 계획이 있었습니다.
10월에 아만다는 에프라타 성경학교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제 반응은 “아, 좋겠네. 성경학교라. 이제 언니의 잠자리 설교가 더 풍부해지겠네.”였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펜실베이니아라는 것만 해도 싫었는데, 차로 30시간이나 걸리는 데다 다른 청소년 두 명, 그것도 남자아이들을 태우고 갈 예정이었습니다. 성경학교였고, 무엇보다 아빠는 제가 대부분의 설교를 듣길 바라셨습니다. 제게는 일주일을 끔찍하게 낭비하는 일로 보였습니다. 게다가 그 성경학교와 거기에 간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는 ‘구원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괜찮았습니다. 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달 내내 빠져나갈 방법을 찾았습니다. 제 친구들은 제가 그들과 함께 지내도록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빠는 제안 중 하나만 고려하셨습니다. 자매 두 명이 저를 자기 가족과 함께 지내게 해 주실 수 있느냐고 물어왔습니다. 그들은 제 또래였고 아빠는 그들과 부모님을 꽤 잘 아셨습니다. 우리 둘 다 그들을 훌륭한 기독교인 가정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빠져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집 아버지는 제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편이 낫겠다고 결정하셨습니다. 거의 울 뻔했습니다.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저는 완전히 흥을 깨는 사람으로 굴기로 했습니다. 차로 가는 내내 찌푸리고 투덜대며 아빠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려고 했습니다. 우리를 맞아 주는 가족을 정말 싫어하고, 성경학교에서 친구를 하나도 사귀지 않고, 필기도 하지 않고 공책에 낙서만 하며 멍하니 있기로 했습니다. 설교도 절대로 듣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첫 번째 맹세는 쉽게 지켰습니다. 차 안에서 30시간을 보내면서 끔찍한 시간을 보내는 게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헤드폰을 꽉 눌러 쓰고 할 수 있는 한 모두를 무시했습니다. 두 번째 맹세는 금세 깨졌습니다. 우리를 맞아 준 가족에게는 사랑스러운 아기가 있었고, 제 또래의 딸 둘은 어디든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가족은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도 사귀지 않고, 필기도 하지 않고, 집중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월요일 밤 아빠는 모두 모임에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도착하자 아만다는 저를 끌고 다니며 제가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아이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모두 꽤 상냥했고 저는 곧 그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더는 친구를 사귀지 않고 필기도 하지 않고 설교도 듣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했습니다. 더는 친구를 사귀지 않았고 필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것은요?
데이비드 쿠퍼가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열정이 넘치고 생생하고 표현력 있는 설교자입니다. 메시지 제목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뵙기”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사랑과 열정은 말 속에서 그대로 빛났습니다. 처음 한 말 중 하나가 제 마음을 사로잡고 무감각해진 양심을 찔렀습니다.
“방문해 주신 여러분 모두께 감사드립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관심을 기울여 이곳에 와서 한 주를 보내며 하나님을 찾으려 하시는 여러분 모두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벌레처럼 느껴졌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세상과 육체와 씨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육체를 이길 승리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악마에게 얽매인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절박한 마음으로 제 반항심을 붙잡으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 중에는 둘 다인 사람도 있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방되기를 기도합니다. 믿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중에는 세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사람도 있지. 게다가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더럽혀지기까지 했고. “오늘 밤 하나님의 자비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비가 오늘 밤 여러분 위에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이곳에 믿지 않고 더럽혀진 분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잠시 정신이 아찔했지만, 그가 다시 말하자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습니다. “그리고 반항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중에는 네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사람도 있는데. “여러분 중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실제로 반항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눈과 귀를 열어 주셔서, 여러분이 지혜롭게 되고 아들에게 입 맞추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충격을 받고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등을 돌리고 자기 선택을 했으며 뒤에 놓인 다리를 불태워 버린 사람을 두고 왜 그토록 마음을 쓸까? 제 마음이 조금 녹았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목마른 땅처럼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흠뻑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상처 입은 제 마음은 제가 만들어 낸 보호막 밖으로 미끄러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메시지가 끝날 무렵 그는 양심이 케이크 틀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틀을 씻는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착한 여자아이는 깨끗해졌다고 생각할 때까지 문지른 뒤 엄마에게 보여 검사를 받습니다. 엄마가 더 문질러야 한다고 생각하면 기꺼이 더 문지릅니다. 그러고는 나쁜 여자아이는 그만하면 됐다고 생각할 때까지 조금 문지르다가 찬장 안쪽에 밀어 넣고 아무도 자기가 한 일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남자아이를 예로 들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정말 바랐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의 삶을 그렇게 들어 보이는 것이 두렵습니까? 지금 하나님께 마음을 열 수 있습니까? 틀이 찬장 속에 있다면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을 빛에,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앞에 들어 보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솔직하게 ‘주님, 제 삶에 제가 거부하고 주님께 숨기는 것이 있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단단하고 반항적인 제 마음은 그 말에 찔렸습니다. 그날 밤 화인 맞고 검게 그을린 제 양심이 빛 가운데 드러났습니다. 저는 문질러 씻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건성으로 닦아 보지도 않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무섭고 절박했지만 여전히 마음을 열지 않고 있었습니다. 제단 앞으로 나오라는 초청이 없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그 모든 일이 있고 나서도 적어도 월요일 밤은 넘겨 더 오래 버틸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칠 때 그가 말했습니다. “이 방에 하나님과 문제를 해결하기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과 문제를 해결하기가 부끄럽습니까? 앞으로 나와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영혼이라고 고백할 생각을 하면 수치스럽습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여러분을 간절히 원하시고 깨끗하게 해 주고 싶어 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여시고, 모든 것에 마음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온 마음으로 데이비드 쿠퍼가 기도를 멈추기를 바랐습니다! 나가서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너무 교만하고 고집스러웠습니다. “부드럽고 다정하게 예수께서 부르시네”를 세 절까지 버텼습니다.
“간절하고 다정한 부르심이 들립니까?” 들리냐고요? 느껴졌습니다! 심장이 평소보다 두 배로 빨리 뛰었고, 그 고동이 뱃속 깊은 곳에서 느껴졌습니다. 정말 몸이 아픈 것 같았습니다. 영혼 깊은 곳까지 아팠습니다. “여러분이 자리에 앉아 있다면, 여러분 중 몇 분은 그러고 계신다는 걸 압니다만, 자리에 앉아서 ‘저는 도저히 그럴 수 없어요’라고 말하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간청에 제 말을 보태도 되겠습니까? 기다리지 마십시오, 제발.”
저는 그 자리에 붙어 있기라도 한 듯 계속 앉아 있었습니다. 정말 그럴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절을 불렀습니다. 그는 응답한 사람들에게 기도실로 가라고 안내하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초청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하나님과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아는 분들은 일어나 저 뒤쪽 방으로 가서 도움을 받으시기를 권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번 주가 여러분에게 훨씬 더 큰 복이 될 것입니다.” 그는 잠시 기다린 뒤 “상담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이라고 말하기 시작하다가 멈췄습니다. 테이프를 주의 깊게 들으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한 어린 여자아이가 일어나 강당 앞쪽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사슬을 끊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기도실에서 나왔을 때 누군가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낯선 땅에 온 이방인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도 그 기쁨을 너무나 원했습니다! 고통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했습니다. 그날 밤 임시 숙소로 돌아와 이불 속에 기어들어 가 하나님께 자신을 제게 보여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다음 날 오후 상담자들을 찾아갔고, 함께 기도하며 끝까지 씨름했습니다. 회개하고 죄를 끊어 버렸고, 용서하고 용서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제 마음은 지금도 넘쳐흐릅니다.
그 주의 나머지 시간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주에 폴 허시버거가 예로 든 스펀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완전히 낯선 것에 흠뻑 잠겨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습니다(필기도 했습니다). 저는 너무 메말라 있어서 아무것도 흘러내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 모든 것을 소화하는 중입니다. 청소년들의 간증은 정말 큰 은혜가 되었고, 특히 타이터스 카우프먼이라는 젊은이의 간증이 그랬습니다. 그는 지난해 성경학교에 와서 회심했다고 말했습니다. 저처럼 온갖 종류의 음악에 얽매여 있었다고 했습니다. 성경학교가 끝나 집에 돌아간 뒤 자기 방에 올라가 음악을 전부 꺼내 버리고 스테레오도 부숴 버렸다고 했습니다. 방에 라디오가 있으면 결국에는 무너져 그 죄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도 아빠에게 숨겨 둔 음악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은 타이터스 카우프먼의 음악처럼 반드시 없애야 했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우리와 함께 차를 타고 온 남자아이들의 부모님이 와 계셨고, 아직 구원받지 못한 제 친구 한 명과 교회에 다니는 그 친구의 경건한 부모님도 와 계셨습니다. 방에 올라가 옷장에서 음악을 꺼냈는데, 나가는 길에 새롭게 맑아진 제 시선이 커다란 책장에 머물렀습니다. 책장에는 혐오스러운 책들이 온갖 종류로 꽂혀 있었습니다. 아빠는 제 책 문제로 저와 맞서기를 두려워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그 책들도 록 음악만큼 나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CD와 테이프를 내려놓고 현관으로 나가 상자를 가져왔습니다. 그 물건을 모두 담는 데는 제법 큰 상자가 두 개나 필요했습니다. 옷장으로 다시 올라가 아빠에게 숨겨 두었던 옷도 꺼냈습니다. 그날 밤 큰 모닥불을 둘러싸고 영광스러운 찬송을 함께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안에 이루신 변화로 저는 날마다 더 큰 은혜를 누립니다. 하나님은 제 마음을 본향으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아빠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우리는 함께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저는 울거나 소리 지르거나 아빠를 완전히 무시하지 않습니다. 남동생과 화해했습니다. 이제 서로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 시간 더 깨어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아만다와는 삶에서 더 중요한 일들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제 구원받지 못한 청소년들의 무리에 받아들여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친구, 자매와 형제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가정을 돌보는 여성이 될 것입니다! 엄마는 제게 바느질을 가르치고 계시고 저는 정말 즐겁게 배우고 있습니다. 회중 찬송 테이프에 맞춰 노래하면 큰 기쁨을 얻습니다. 그 주 이후 악몽은 한 번만 꾸었는데, 책 한 권이 제 천국을 흐리게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일을 회개하고 책을 불태웠으며, 그 뒤로는 예수님의 품 안에서 평안히 잠들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제 기도는,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아직 평안을 찾지 못하고 자신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이가 있다면, 희망이 없어 보였던 제 상황을 통해 희망을 얻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흐려진 눈앞에 길이 분명히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 평안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죄와 자아에 대해 죽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오, 빛으로 오라, 그 빛이 너를 위해 비치고 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