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전쟁의 소문, 온 세상을 휩쓰는 전염병, 경제 붕괴의 속삭임, 세심하게 세운 계획의 차질.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작은 미생물이 온 인류에게 파고들어 그 여파로 모든 것을 바꾸고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 가도록 허락하실까요? 그것이 우리 가족에게 닥치면 어쩌죠? 두려움의 차가운 손이 제 마음을 움켜쥡니다.
하지만 잠깐요. 이 감정은 낯익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최근의 불확실성이 닥치기 훨씬 전부터 자주 이런 감정을 느꼈습니다. 아들이 높은 나무에 올라갔을 때나 관공서에서 나쁜 소식이 들려왔을 때, 저는 날것 그대로의 두려움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때로는 불확실한 일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간의 첫 반응이기 때문에 그저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저는 편안하게 지내고 고통과 슬픔이 없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행복하고 근심 없이 살다가 마지막에는 극적인 일 없이 죽고 싶습니다. 세심하게 통제해 온 그 계획을 뒤흔들 듯한 일이 생기면, 두려움이 흉측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때로 두려움은 비합리적이어서 말끔하게 표현된 질문조차 하지 못합니다. 또 어떤 때는 질문들이 대담한 침입자처럼 평온한 제 세상으로 몰래 들어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어쩌죠? 삶이 다시는 예전 같지 않으면 어쩌죠? 제 아이들 중 하나에게 끔찍한 일이 생기면 어쩌죠?
이런 “만약에”라는 생각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살펴봅시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미래에 초점을 맞출 때 두려움과 걱정은 마음속에 뿌리를 내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러므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마 6:27, 34. 같은 구절을 ESV 번역본에서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한 시간이라도 더할 수 있느냐? 그러므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다시 말해, 우리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세상이나 우리 문제를 바로잡을 힘이 없습니다. 죽는 날이나 죽음이 어떻게 찾아올지를 정할 힘도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염려하는 것이 이 난제의 답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요?
답의 한 부분은 하나님의 영원한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환난은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주제인데, 우리가 21세기의 풍요로운 생활방식에 익숙해져 있어 그 사실을 자주 놓칩니다. 많은 신자에게 환난은 기독교 신앙생활의 일상적인 일부가 아닙니다. 그러다가 슬픔이나 죽음, 산산이 부서지는 일이 삶에 닥치면 혼란에 빠집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시면서 왜 이런 일을 내 삶에 허락하실까?) 어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라고 하시면서 이런 일들을 허락하신다면, 어떻게 그분을 신뢰할 수 있을까?) 저 역시 이런 질문을 해 왔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까? 제가 벌을 받고 있는 걸까?
이것이 하나님의 길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마음이 겪는 고통입니다.
자연조차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시련을 허락하실 때 모든 피조물의 유익을 염두에 두고 계심을 보여 줍니다. 로지폴 소나무의 씨앗은 솔방울의 단단한 겉껍질을 열어 씨앗을 내보내기 위해 산불이 필요합니다. 애벌레는 온전한 정체성을 버리고 어둡고 좁은 고치 속에서 몇 주를 보내야 나비로 나옵니다. 숲 바닥에 필요한 양분은 나무가 쓰러져 썩어 부식토가 되는 과정에 달려 있습니다. 밀은 밀가루로 빻아진 뒤에야 유익한 식품이 됩니다. 금은 강한 열로 정련된 뒤 훨씬 더 아름답고 귀해집니다. 갓난아기의 사랑스러운 얼굴은 출산의 고통을 겪은 뒤에야 볼 수 있습니다. 비와 먹구름 없이는 무지개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고통이 없으면 우리의 영혼은 정체되어 있습니다.
모든 창조물 안에 나타난 이것이 하나님의 설계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기뻐하라. 이는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때 너희도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4: 12-13.
이 구절은 마음 둘레에 단단한 껍질을 두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속삭이시는 말씀입니다. 그저 부서지고, 불과 축축하고 어두운 흙과 옥죄는 고치와 고통에 자신을 내맡기십시오. 애벌레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거나, 씨앗에게 싹을 틔우고 자랄 거라고 안심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로지폴 소나무에게 불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납득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연의 순리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의 가치를 이해하면 두려움과 걱정은 사라질 것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께서 우리 영혼을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시키시는 것일 뿐이라고 믿을 때,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기뻐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가장 어두운 시련조차 하나님께는 어둡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둠을 꿰뚫어 보시고 우리 영혼에 생명을 주는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슬픔이 짧은 시간 동안 지속될 뿐이며 머지않아 영원한 기쁨으로 바뀔 것을 아십니다. 천국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간직하신 비밀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이 다가오고 있음을 신뢰하는 것뿐입니다.
1990년대의 무법한 구호인 “두려움 없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두려움 없이”라고 참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영원의 소망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안심하고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 재세례파 선조들은 이를 잘 알고 실천했으며, 진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았습니다. 우리도 땅의 것보다 영적인 것을 귀하게 여기는 강한 정신력으로 삶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일이나 세계적인 전염병, 박해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영원하며, 이 땅에서의 우리의 안락과 행복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일시적인 환난을 두려워하는 대신, 우리의 영혼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 곧 거짓된 안전감으로 영혼을 뒤덮는 피상적인 삶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영이 아니요,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라 –딤후 1:7. 두려움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마음을 잠식하고 집중력을 빼앗습니다. 마귀는 이를 알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밤에 자주 저를 덮쳐 약하고 지친 상태로 남겨 둡니다. 어리석은 일일까요? 그렇습니다. 대부분 제 두려움은 비합리적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제가 싸워야 하는 싸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움 대신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세 가지 끈을 함께 엮으면 압박을 받아도 끊어지지 않는 튼튼한 밧줄이 됩니다.
이 세 가지 끈을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능력은 단순히 ‘힘을 써서 행하거나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다음으로 옳은 일을 행할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분의 능력은 두려움과 통제에 집착하는 인간의 성향을 이겨 냅니다.
사랑은 깊고 다정한 애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을 허락하시고 뜻하시는 가운데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랑을 우리 마음에 두셔서 삶의 모든 것을 감미롭게 하시고,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했음을 모든 이가 알게 하십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사랑은 우리를 자유롭고 열린 마음으로 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선택하는 여성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이끄시는 사랑을 이해한다면 두려움이 들어설 자리는 없습니다.
절제하는 마음은 건강하고 온전한 상태이며, 유능하고 분별력 있는 마음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는 자제력과 자기 훈련을 갖춘 사람이라는 뜻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활발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며 유능하고 분별력 있게 삶을 이끌어 가는 여성들, 두려움이 빚어내는 내면의 소동을 떨치고 맑은 정신으로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 복을 끼치는 여성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두려움을 내려놓고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는 이 세 겹의 끈을 붙들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십시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혼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눅 10:27. 손으로 위로하고 복을 나누며,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고, 해가 뜨고 지는 아름다움을 누릴 시간을 내십시오. 작은 의무 하나하나를 신뢰와 신실함의 마음으로 감당하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풍성한 은혜와 기쁨 가운데 사는 모습으로 발견되도록 합시다.
전쟁과 전쟁의 소문? 질병? 경제 붕괴? 박해? 트라우마?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말은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것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 자매들이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는 이미 이기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