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저를 골짜기, 그것도 길고 끝이 없어 보이는 골짜기를 지나도록 이끌어 오셨습니다. 어떤 상황이 해결되자마자 또 다른 일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런 어려움에는 대응이 필요합니다. 많은 경우, 육체적인 행동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영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제 경우에는 건강한 감정적 선택,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성경에 근거한 감정적 선택을 배우기 시작하는 데 이르기까지 약 2년이 걸렸습니다.
이 글에서 “영”은 “마음의 기질이나 성향, 또는 관점”으로 정의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제게 가르쳐 오신 여러 종류의 영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중 두 가지는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고, 두 가지는 특별히 우리 여성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성경적이고 건강한 영이 무엇인지 논하기 전에, 그것이 선택의 문제임을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은 상황의 결과가 아닙니다. 갑자기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젊은 여성인 우리는 감정에 이끌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이끄는” 감정 대부분은 건강하지 않습니다. 성경적인 영은 감정이나 상황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내리는 선택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그대로 두면 건강하지 않은 감정은 괴물처럼 자라나 우리를 우울함과 원망과 부도덕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여러 곳으로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정의된 영의 유형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상한 영
영원에 거하시며 이름이 거룩하신 높고 높으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는 [짓밟힌] 심령과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들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이사야 57:15.
무엇보다도 우리가 상한 마음을 갖기로 선택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자신이 상하도록 허락하지 않으면, 온갖 부정적인 감정과 반응, 특히 죄가 들어올 문을 열어 주게 됩니다.
상한 마음은 우리 스스로 선택하기 어렵고, 거의 불가능하기까지 합니다. 흔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으로 이끄십니다. 경건하게 마음이 상하는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분노나 낙담 같은 건강하지 않은 것을 택할 것인가 하는 선택입니다. 상한 마음은 모든 것을 벗겨 냅니다. 병이나 실망처럼 나쁜 일에 대한 통제권과 미래에 대한 소망처럼 좋은 일에 대한 통제권까지 내려놓으라고 요구합니다. 마음이 상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대부분 깊은 상함은 한순간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포기하고, 또 포기하고, 다시 포기하는 고통스러운 여정입니다. 원망에 빠지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사실 마음이 짓밟히는 때야말로, 그럴 만한 좋은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이더라도 하나님께서 선하시다고 믿기로 선택하는 때입니다.
상한 마음은 선택입니다. 매우 어려운 선택이지만, 자아를 없애는 과정이기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길을 열어 줍니다. 또한 다른 더 고귀한 자질들이 드러날 수 있게 합니다.
절제하는 영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또한] 절제하라… –베드로전서 1:13.
이 구절에서 “절제하다”의 뜻은 “영적으로 차분하고 침착하다, 절도 있고 냉정하다”입니다. 흥미로운 단어입니다. 이 구절에 따르면 우리는 영적으로 차분하고 침착해야 합니다. 젊은 여성인 우리는 상황과 형편에 대한 감정이 얼마나 쉽게, 심지어 자동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지 잘 압니다.
저는 앞날이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 있었고, 너무 낙담한 나머지 거의 더는 버틸 수 없었습니다. 일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처럼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이 구절을 공부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제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제가 아주 어두운 시기에 있었더라도, 제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은 차분해지고 격렬한 감정이 저를 지배하게 두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순간순간 제 영을 다스리기로 선택해야 하는 자리로 이끄셨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자, 그에 따라 살아갈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셨고, 그 결과 제 영은 훨씬 더 안정되고 평안해졌습니다.
그러니 어두운 시기에도 용기를 내십시오! 상황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대응하기로 선택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영과 성품을 연단하시는 동시에, 그 일로 영광을 받기 원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이끌고 계신 여정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제 영을 계속 인내로 상하게 하시고 빚어 가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온유한 영
오직 온유하고 고요한 영의 장식으로 할지니… –베드로전서 3:4.
여러 면에서 온유한 영은 자신을 내어 맡기는 영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온전히 있는 영입니다. 불쾌한 상황에 맞서 싸우거나 삶을 “더 낫게” 만들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수동적으로 “무슨 일이 닥쳐도 참고 넘어가는” 위축된 태도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영은 재능과 능력이 있고, 훈련되어 있으며 유능하고, 교회의 사역에 매우 유익하게 쓰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여 그분의 뜻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고요한 영
오직 온유하고 고요한 영의 장식으로 할지니… –베드로전서 3:4.
고요하고 평안한 영은 놀라운 자질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서 이런 영을 본다면, 그것은 상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에 따르면 이것은 선택입니다.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너희의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30:15.
고요한 영과 온유한 영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나는 일이든 지루한 일이든, 쉬운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한발 물러서서 하나님께서 이끄시도록 하고, 어떤 식으로든 그분께 저항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영적으로 크게 동요하는 때가 있으며, 단지 의지력을 발휘한다고 해서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주며, 하나님의 약속을 공부함으로써 우리 영에 평안과 안식을 얻고, 계속 나아갈 용기와 은혜도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셨나니, 그가 내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소망 가운데 안식하리로다. –시편 16:8,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