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 '아니오'라고 하실 때

성경 교리

언어: ko  
글쓴이: by Robert Burkholder  
New Bloomfield, PA  
원문 발행호: The Heartbeat of the Remnant, 2023년 겨울  
원문 쪽수: 6–7  
글 읽기: <https://remnant.truechristian.church/ko/그리스도인의-삶/하나님이-아니오-라고-하실-때/>
원본 PDF: Winter\-2023\-Remnant\_for\-web\(2\)\.pdf
[The Heartbeat of the Remnant, 2023년 겨울](<https://remnant.truechristian.church/ko/issues/heartbeat-remnant-2023-winter/>)

제목만 읽어도 아마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본성상 “아니오”라는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불순종으로 인해 “아니오”를 자초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니오”라고 하신 경우입니다\. “내가 청하노니, 내가 건너가서 그 좋은 땅을 보게 하소서… 그러나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지 아니하시고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그것으로 족하니라 이 일에 대하여 다시는 내게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신명기 3:25,26\)\.

신명기 1:42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아니오”라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되 올라가지 말며 싸우지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없으니 너희가 원수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고 하셨으나 그들은 그분의 “아니오”에 대항하여 반역했습니다\. “너희가 돌아와서 여호와 앞에서 울었으나 여호와는 너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고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시니라” \(신명기 1:45\)\.

하나님은 바울에게도 “아니오”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계시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혹히 지나치게 높아지지 아니하려 함이라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내게 주사 나를 쳐서 쓰러지게 하였나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세 번이나 주께 구하였으나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내가 나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12:7\-9\)\.

기도하는 사람 바울이 하나님의 “아니오”를 받아들인 데 초점을 맞추어 봅시다\.

첫째, 받아들인다는 것은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아니오”를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약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둘째, 받아들인다는 것이 비참한 체념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세 번이나 주께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즉시 주어지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비교: 누가복음 18:1\-8\)\.

셋째, 하나님의 “아니오”는 더 큰 악이나 약함을 피하기 위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두 번이나 육체의 가시가 “내가 지나치게 높아지지 아니하려 함이라”는 목적을 위해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바울과 달리 하나님의 “아니오”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을 수 있으나,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바울과 함께 우리도 더 높은 목적이나 이익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거절을 감내해야 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아니오”로 말미암은 바울의 약함은 그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답답한 일들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럴 때에 곧 강함이라” \(고린도후서 12:10\)\. 어떤 사람들이 겪는 슬픔과 고난은 참으로 주 안에서와 그의 능력 안에서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섯째, 바울의 약함은 그 위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약함 가운데서 온전하고 충분했습니다\. 바울의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영광은 바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돌아갔습니다\. 바울이 당한 약함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냈습니다\.

여섯째,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의 “아니오”의 대답을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에 대한 수용, 우리의 약함과 연약함을 도우시는 그분의 능력과 권능은 충분하고 완전합니다\.

일곱째, 바울은 하나님을 “아니오”라고 받아들인 후에야 그의 연약함을 자랑했습니다\. 바울은 결국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머물게 함을 보았습니다\. 바울의 약함은 인간의 충분함이나 개인적 능력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방식으로 신적 능력을 드러내고 크게 했습니다\.

여덟째, 불행히도 바울은 그 수단이 되는 그릇, 곧 고난을 감내해야 하는 자였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영광이 참으로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 그것을 기쁘이 견뎠습니다\(비교: 고린도후서 4:7\-11; 갈라디아서 4:13,14; 6:14,17\)\. 우리가 동일하게 할 준비가 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아니오”를 받아들이거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니오”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우리의 삶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오”라고 하실 때 그리스도인은 다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옳게 하실 것이다\. “저는… 진실의 하나님이시며 죄가 없으시고 공정하신 이시니라” \(신명기 32:4\)\. 사람은 보지 못하거나 요브처럼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옳게 행하실 것입니다\. “땅의 모든 재판자가 옳게 판단하지 아니하시랴?” \(창세기 18:25\)\.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르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 생각이 아니요 내 길이 너희 길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사야 55:8,9\)\.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을 보시며 어떤 것도 그에게 숨겨지지 않습니다\. “이런 지식은 내게 너무 기이하여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시편 139:6\)\.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길에서 끌어내릴 때 아이가 항의하여 우는 것과 같듯\(세발자전거 타기에는 참 좋은 곳인데\!\), 우리가 하나님께서 “아니오”라고 하실 때 울 수 있지만, 부모가 알지 못하는 위험을 아이의 부모는 알고 계십니다\.

기도에는 주요한 목적이 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조작하려는 시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 고난당하시는 구주께서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노라”라고 기도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니오”라고 하실 때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고 사실상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내 뜻이 이루어지길” 불평합니다\. 아마도 기도의 최고의 목적은 우리 삶과 소원과 필요와 욕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니오”라고 하실 때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재의 “아니오”가 발전 중인 “예”일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에 갈 것임을 들었습니다\(사도행전 19:21; 23:11\)\. 그러나 수감의 감옥살이, 노예로서의 족쇄, 죽음의 문턱은 달리 말하는 듯 보였습니다\. 이년의 구금은 로마 여행의 확실한 증거가 아니었고, 절망적인 항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사도행전 24:27; 27:20\)\. 그러나 우리 모두 알다시피 바울은 로마에 갔습니다\(사도행전 28:16\)\!

하나님의 법이 우선한다\. 자연의 법칙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이 누군가가 절벽에서 떨어지기를 원치 않으시더라도 특정 물리적 법칙이 깨지면 그러한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생물학적 법칙을 정하셨습니다\. 질병이 전염될 수 있고 고통과 죽음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으나, 그가 그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법을 사용하지 않거나 그것을 얻는 하나님의 방편을 거스르면 그는 그것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우리는 물리적 삶의 여러 가지 질서에서 종종 세상의 법칙의 희생자가 됩니다\. 물론 반대도 참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물질적 법칙으로 복을 받습니다\(마태복음 5:45; 사도행전 14:17; 디모데전서 5:23\)\.

결론적으로, 옛날 요브는 전례 없는 인간적 재난과 고뇌와 마음과 몸과 영혼의 고문을 견뎠습니다\. 그의 신실함과 굳건한 인내는 슬픔에 잠긴 삼천 년의 인류에게 복을 주었습니다\. 스데반과 야고보는 조기에 폭력적인 죽음을 맞았습니다\(사도행전 7장; 12장\)\. 우리는 그들이 살아 있기를 바랄 때 그들은 죽었습니다\. 그들의 고난과 죽음으로 말미암아 초대 제자들에게 새 신앙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죽을 수 있으나 승리 안에서 살 수 있음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대담해져서 그들의 신앙과 영생의 소망을 부인하기보다는 고문과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구원은 왔습니다\. 아니요, 스데반과 야고보, 혹은 요브와 같은 고난받는 종들에게는 오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은 부끄럽지 않은 소망 곧 소멸되지 않는 소망으로 왔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하여 종노릇하던 우리를 능히 건지시는 분을 통하여 왔습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선물로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눈 덮인 들판의 오래된 집과 앙상한 나무들](<https://remnant.truechristian.church/images/articles/8072bb08-e7aa-4602-a3c6-f82161b740ae-1.jpg>)

<aside class="translation-notice" data-translation-notice="ai" lang="ko" dir="ltr" role="note">
  <p>이 글은 OpenAI의 인공지능(모델: gpt-5-mini-2025-08-07)으로 번역되었으며 아직 사람의 검토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영어 원문이 권위 있는 기준입니다. 의미가 불확실한 경우 영어 원문을 확인해 주십시오. <a href="/en/christian-living/when-god-says-no/" data-source-article-id="8072bb08-e7aa-4602-a3c6-f82161b740ae" hreflang="en">영어 원문</a></p>
</aside>

## 잡지 출처

- [눈 덮인 들판의 오래된 집과 앙상한 나무들](<https://remnant.truechristian.church/images/articles/8072bb08-e7aa-4602-a3c6-f82161b740ae-1.jpg>): Misty Photograph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