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겔라센하이트—의도적인 초연함

독일어 ‘겔라센하이트’라는 말의 개념에 대한 설명

언어: ko  
글쓴이: Overview of a tract by Andreas Rudolff\-Bodenstein von Karlstadt \(1486\-1541\)  
원문 발행호: The Heartbeat of The Remnant, 2011년 5월/6월, 호수 3  
원문 쪽수: 18–22  
글 읽기: <https://remnant.truechristian.church/ko/그리스도인의-삶/겔라센하이트-의도적인-초연함/>
원본 PDF: 2011\-05\-Remnant\.pdf
[The Heartbeat of The Remnant, 2011년 5월/6월](<https://remnant.truechristian.church/ko/issues/heartbeat-remnant-2011-05/>)

무언가를 놓아 버리거나 떠나는 사람은 “초연한” 사람이다\. 버림받은 사람도 초연한 사람이라 할 수 있지만, 차이는 “버림받은” 것은 수동적이고\(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 “초연한” 것은 능동적\(또는 재귀적, 즉 그 사람이 스스로 그렇게 한다\)이라는 점이다\. 이에 해당하는 라틴어 표현을 원한다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는 자는 누구든지”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말씀보다 더 나은 것은 생각나지 않는다\. 라틴어에는 *relinquo*\(포기하다\)가 쓰인다\. 그러나 *deserere*\(버리다\), *renunciare*\(포기하다\), *dimittere*\(떠나보내다\) 같은 다른 라틴어 표현들도 있는데, 이 역시 겔라센하이트\(Gelassenheit\)를 묘사한다\.

“사람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야 한다”고 기록된 곳에서, 아내를 향한 사랑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능가하고 그것을 밀어내는 점에 유의하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본성적으로 피조물에게 품는 모든 사랑과 기쁨을 밀어내야 한다\. 그렇다\. 하나님을 우리의 보호자이자 내주하시는 분, 곧 주님으로 모시려면 모든 피조물을 떠나보내야 한다\.

부부가 경험하는 겔라센하이트, 곧 배우자와 결합하기 위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는 일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벗어 버리고 피조물을 초월하여 창조되지 않은 더 높은 것들을 향해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 우리가 놓아야 할 것

그러므로 내가 어떤 식으로든 내 것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하라\. “내 것”에는 나의 명예, 이익, 상처, 욕망, 불쾌감, 보상, 고통, 생명, 죽음, 슬픔, 기쁨, 그리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그것이 물질적 소유이든, 지성·의지력·욕구처럼 몸이나 내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든 마찬가지다\. 자아와 “나 됨”이 매달릴 수 있는 모든 것은 내가 “초연한” 사람이 되려면 떠나고 떨어져 나가야 한다\.

이 길은 시작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계속 걸어가야 한다\. 나는 참으로 자아에 대해 죽을 만큼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잠겨야 한다\. 그러므로 잔혹하고 치욕스러운 십자가에 못 박히기를 바라며, “나 자신”을 거룩한 두려움으로 대하고, “나의” 생각과 욕망과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온전히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것들이 피해야 할 끔찍한 악덕인 것처럼 말이다\. 마치 노랗고 고름이 찬 종기를 피하듯 해야 한다\. 나는 선을 행할 능력이 없음을 보아야 하고, 반면에 모든 악하고 벌받을 만하고 수치스러운 일을 할 능력과 성향이 내게 있음을 보아야 한다\.

## 필요한 것만 구하라

나는 생존에 필요한 것 외에는 피조물에게서 아무것도 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구해야 하지만,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피조물을 구해서는 안 된다\. 이는 병든 사람이 순전히 필요해서, 또는 생존을 위한 약으로 큰 두려움 가운데 음식을 먹되 단순한 즐거움을 위해 먹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다\. 먹고 마시는 것은 몸에 필요한 일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음식과 음료를 주신 분이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으려 늘 마음에 새기며 큰 두려움 가운데 그렇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한 말씀으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학교가 얼마나 쓰라리고 엄격한지, 또 우리의 지성과 의지와 본성에 얼마나 두렵고 가련한 일인지 보라\. 그리스도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신 것도 옳았다는 점에 유의하라\. 눅 14:27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겔라센하이트\(초연함\)가 멈춰 서지 않고 날마다 져야 하는 십자가라고 가르치신다\.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며, 의지와 생각과 사랑과 욕망으로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고난을 겪어야 한다\.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뜻에 녹아들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덕을 단 한 번만 말씀하시거나 고별 설교에서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번, 그리고 한 비유에서는 자주, 제자는 집이나 탑을 지으려는 사람처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사람은 주머니나 가방을 살펴 재산을 세어 그 건축을 마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자신에게 충분한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면 그제야 건축을 시작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먼저 모든 것을 숙고하고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 마침내는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하고, 미워하여 더는 자기 것으로 삼고 싶지 않은 것을 마침내 놓아 버리는 사람의 태도와 의도로 그것들을 내어 주어야 한다\. 이것을 *renunciare*\(포기하다\), 곧 어떤 것을 완전히 놓아 자기에게서 몰아내는 일이라고 한다\.

## 겔라센하이트

제단 위에 선물을 묶어 두고,  
 옥합을 깨뜨리며,  
 내 영혼 위에 주님의 손을 얹으소서—  
 주님의 다스림 아래 나를 두소서\.  
 주께서 명하실 때  
 내가 마다하는 자로 드러나지 않으리니,  
 내가 몸부림쳐도 구주여 붙드시고  
 토기장이의 자애로운 손에 나를 두소서\.

내 마음의 가장 간절한 소망도 거두소서,  
 그것이 주님에게서 멀어지려 한다면;  
 육신의 헛된 장식에서 내 눈을 들어 올리셔서  
 오직 주님만 보게 하소서\.  
 기쁨도 주님의 제단 위에 놓여 있으니—  
 고통과 눈물이 그 대가일 수 있겠지만—  
 희생이 아닌 것을  
 나는 드리지 않으리, 드릴 수 없으리\.

—*클라우디아 에시*

이처럼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제자요 견습자가 될 수 있다\. 영혼은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소유하고 다스리며 단장하시게 하려면, 첫 창조\(하늘과 땅\)처럼 “형체가 없고”, 곧 모든 피조물을 벗어 버린 벌거벗은 상태이며 버려진 상태여야 한다\. 피조된 모든 것을 벗어 버릴 수 있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리라고 꿈꾸어서는 안 된다\. 피조물이 영혼을 채우고 위로하며 기쁘게 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들어오신다고 생각하지 말라\. 예레미야 7:24에 “그들은 자기 욕망과 마음의 악함을 따라 내게서 떠났고, 내 말을 듣기를 거부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그런 주님께 등을 돌리고 그분을 저버린다면, 그분께서 우리를 향해 얼굴을 돌리시고 호의를 베푸셔야 하겠는가? 아니다\. 이런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용서를 복권으로 만들어 버렸다\.

## 영적 할례

내가 하나님 외에 무언가를 사랑한다면,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에서 다른 것을 사랑하는 자리는 하나님께서 차지하지 못하시므로, 나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이 사랑은 영적 할례, 곧 마음에서 모든 피조물을 잘라 내는 일이다\. 피조물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마음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동안에는 마음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 하나님이 아닌 어떤 것에서 도움과 위로와 신뢰를 구한다면, 그 마음은 할례받지 않은 것이다\. 믿음이 마음에 할례를 행한다고 하는 까닭은 믿음이 마음을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들어 올리고 다른 모든 것에서 얻는 위로를 빼앗기 때문이다\.

## 하나님께 붙어 있음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랑이라는 접착제로 우리를 붙이고 결합하신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참으로 믿는 마음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에도 매달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께 결속하는 접착제이므로, 할례받고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피조물을 버리고 사랑으로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에도 매달리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더 나아가, 피조물을 향한 사랑과 욕망과 위안과 신뢰가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할례와 피조물을 내쫓는 일이 이루어진다\.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 마음에 할례를 베푸셔서 너희가 온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하게 하실 것이다\.” 신 30:6

## 겔라센하이트와 마음의 할례는 같은 것이다

“마음에서 모든 욕망과 신뢰와 위안과 피조물에 대한 두려움이 할례받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모세와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놓지 않으면\(곧 위안과 기쁨과 신뢰를 얻거나 두려워하는 것들을 놓지 않으면\)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 같은 뜻이 아닌지 생각해 보라\.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을 잔치에 초대하셨지만, 저마다 핑계를 대어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우리는 읽는다\. 한 사람은 밭을 샀고, 다른 사람은 소 몇 마리를 샀으며, 세 번째 사람은 결혼했다\. 등등\. 눅 14:18\-21 그들 모두는 마음이 막혀 있고 내어 맡겨지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좋은 잔치에 초대받는 일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비유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음성과 가르침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사랑하려면 우리가 버려야 하는 피조물도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밭과 소와 아내를 언급하신다\. 이것들이 우리가 놓아야 할 다른 모든 피조물을 가리키기는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또 언급하신 것 중 몇 가지를 들겠다\. 집과 밭, 형제와 자매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와 아내,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의 영혼이다\.

## 나 됨과 자기 됨

내어 맡기는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모든 것을 놓고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어 맡겨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좋은 것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본성적인 어떤 것도 탐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을 벗어 버린 지점에 이르면 모든 것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다\.

이런 겔라센하이트는 손에서 동전 하나를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단순한 내려놓기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버지나 어머니를 죽이거나 자살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 겔라센하이트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것들에 대해 품을 수 있는 사랑과 기쁨과 걱정과 신뢰와 두려움을 끊어 내는 일이다\. 요컨대, 그런 내려놓음은 우리 자신인 모든 것을 없애고 우리가 탐낼 수 있는 모든 것에서 돌아서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만이 우리의 사랑과 기쁨과 걱정과 신뢰와 도움과 두려움과 모든 것이 되시게 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게 하라

우리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음식과 음료를 구한다\. 친족과도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런 일들을 걱정으로 가득 채우는 점에서 불신자들과 같아서는 안 된다\. 동물처럼 걱정에서 자유로워야 하고, 소처럼 음식을 오직 필요에 따라 누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말과 노새보다 더 나쁘다\.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먹고 마시며 건강에 좋은 것 이상으로 먹기 때문이다\. 우리는 배를 우리의 신으로 세워 하나님을 노하시게 한다\. 눈을 뜨고 백합과 나무와 새들을 바라보며, 이 피조물들에게 옷을 입히고 먹이는 이가 누구인지, 그것들이 걱정하는지 아닌지 배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옷과 쉴 곳과 음식과 음료를 걱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피조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돈이나 음식과 관련하여 확신과 위안과 욕망과 염려와 두려움에 짓눌린 사람은 돈과 음식을 염려하는 만큼 믿음을 거스르는 죄를 짓는다\. 왜 그런가? 그리스도께서는 음식과 음료와 옷을 지나치게 걱정할 때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한 신뢰와 확신이 적음을 드러낸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이 죄,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 내어 맡기지 않는 태도는 할례받지 않은 마음을 나타내거나 드러내며, 이런 죄를 짓는 사람은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적어도 소홀히 여기고 그분을 하찮게 여기거나 거의 아무 가치도 두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라\.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열렬한 사랑과 확고한 경외심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만 매달려야 하며, 그러면 필요한 모든 것이 더해질 것임을 알 수 있다\. 마 6:33

![지구본 위아래에 놓인 두 손](<https://remnant.truechristian.church/images/articles/51c6b872-b5d3-45c6-a0b1-d1dd48ece711-1.jpg>) 

하늘을 붙잡을 수 있도록  
 땅을 놓아야 한다\.  
 이 “내려놓음”이 “겔라센하이트”다\.

## 뒤돌아보지 말라

그렇다\. 우리는 확고한 눈길로 오직 하나님만 굳게 구해야 하며, 차라리 죽을지언정 뒤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 번이라도 기꺼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느니 천 번 죽는 편을 택해야 한다\. 눈을 일시적인 재물에 고정할 때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눅 9:62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뒤돌아보면 그리스도의 학교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들으라\. 또 그리스도의 견습자가 되려면 모든 것을 잘라 내고 마음에서 떼어 내며 집을 깨끗이 쓸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으라\. 누가복음 9장과 14장을 나란히 놓고 의미를 결합하여 비교해 보면, 틀림없이 충격을 받고 외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가련한 사람들인가\! 오,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고난이 얼마나 필요한가\!

##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쏟아 내리셔서 만개한 모든 것을 멸하셨을 때, 롯의 아내는 아마 자기 재물이나 수입이나 친구들을 돌아보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일어날 바로 그 일이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 은밀히 빛을 비추실 때에도 사람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 내어 맡기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재물을 얻고 수레 가득 음식을 쌓아 두는 데 열중해서는 안 된다\. 이미 얻은 재물이 순식간에 사라질 때 충격을 받아서도 안 된다\. 지금 가진 재물이 우리를 위로하거나 달래게 해서도 안 된다\. 대신 하나님의 나라, 곧 그분의 영원한 뜻을 사랑과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 겔라센하이트를  
 자랑하지 말라

우리가 초연해져야 할 위에 언급된 것들을 알아보고 고백하며 멀리할 때, 지식과 고백과 내려놓음이 그대의 사랑과 기쁨이 되게 하지 말라\. 겔라센하이트를 사랑하다가 멸망하지 않도록 하라\. 하나님을 위해 뺨을 맞은 사람이 복수하거나 마음에 담아 두지 않기로 결심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인내를 칭찬받거나 인내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 여겨지기를 몹시 바랄 수 있다\! 또는 자신을 방어할 힘이 있었는데도 반격하지 않고 맞도록 내버려 둔 일, 혹은 대꾸하지 않은 채 나귀나 난봉꾼이나 농부라고 불린 일 때문에 속으로 괴로워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고난을 의식하며 거기 서서 그것을 누리고 사랑한다\. 하나님만 섬기고 오직 하나님께 시선을 두기 위해서는 이 사랑에서도 달아나야 했는데 말이다\.

요점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은 마음을 반만 바쳐 섬겨서는 안 되고, 온 영혼과 의지로 섬겨야 한다\.

## 자아

이 모든 것을 통해 자아의 의미를 배울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을 참으로 초연하게 섬기면 영혼의 눈이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향해 들리고, 헤아릴 수 없는 선, 곧 하나님 자신 안으로 스며든다\. 그곳에는 *ego*, 곧 자아가 있을 수 없다\. 영혼이 하나님의 뜻과 영원히 선하신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 한, 마음 역시 어떤 피조물에 뿌리를 내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온전히 내어 맡겨지고 스스로를 초연하게 하려는 사람은 자아를 돌이킬 수 없이 벗어 버리고, 자신의 나 됨 또는 자기중심성을 기꺼이 포기해야 한다\. 그러면 내어 맡겨진 자아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뜻 외에는 아무것도 보거나 듣거나 맛보거나 바라거나 이해하거나 뜻하지 않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거나 그 뜻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 순교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져야 할 십자가다\!

## 그리스도 안의 새 생명

그러면 멸시받고 내어 맡겨지고 버려진 자아, 자기됨, 곧 나 됨은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된다\. 사람은 자신의 삶이 더는 인간의 삶이 아니라 신적인 삶이며,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갈 2:20 이렇게 자아를 내어 맡겼는지는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우리를 기쁘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외에는 어떤 피조물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때 드러나고 판명된다\. 그때 우리는 초연하다\. 더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만 사랑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하기를 바란다\. 곧 하나님의 뜻 안에 우리의 사랑과 욕망과 기쁨과 영광과 생명과 구원이 뿌리내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심으로 기도한다\. “주님,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주님의 뜻이 모든 지상의 피조물 안에서 힘차게 역사하게 하소서\!”

## 그리스도—길이요 진리요 생명

하나님께서는 가장 높고 훌륭한 방식으로 그렇게 내어 맡기는 삶을 사신 아들 그리스도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우리에게 보내셨다\. 우리가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분께서 걸으신 대로 걷는 한 속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흔들리지 않는 진리가 무엇을 가르치는지 살펴야 한다\.

## 두 종류의 씨앗

그리스도께서는 죽지 않은 씨앗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홀로 남는다는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씨앗에 본성적인 생명을 사랑하지만 결국 그것을 파괴하는 사람을 비유하신다\. 씨앗이 살아 있는 한 열매를 맺지 못하듯, 생명을 살려 둠으로써 그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한 새 생명이나 선한 일을 가질 수 없다\. 아무리 그것을 내세워도 자기 사랑 안에 머무는 한 모든 것은 잃어버린 것이고 무가치하며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무와 잎을 저주하시고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불에 넘기신다\. 우리가 뛰고 일하고 노래하고 금식하고 기도하며 환난을 겪을 수도 있지만… 자연적인 생명을 계속 사랑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모두 헛된 일이다\.

## 영혼에 속한 삶을 미워함

영혼에 속한 삶을 사랑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강한 소금을 더해야 한다\. 피조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초자연적인 미움과 혐오가 대신해야 한다\. 그때 씨앗은 죽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사랑과 욕망과 편애와 영혼의 모든 정욕이 죽어야 한다\. 그때 영혼은 자연적인 욕망에서 돌이킬 수 없이 돌아선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받는 세례다\. 곧 옛 자연적 생명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붙들리고, 세례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찔리고 죽임을 당해 묻혔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옛 자연적 생명으로가 아니라 새롭고 자연을 거스르는 생명으로 말이다\. 롬 6:4\-11 그때 사람은 참으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말할 수 있다\. 갈 2:20

![두 사람이 물에서 다른 사람을 일으켜 주는 모습](<https://remnant.truechristian.church/images/articles/51c6b872-b5d3-45c6-a0b1-d1dd48ece711-2.jpg>) 

영혼이 자연적인 욕망에서  
 돌이킬 수 없이 돌아설 때,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받는 세례다\.

서로 대립하고 긴장 관계에 있는 두 삶이 있다\. 옛 삶과 자연적 삶, 새 삶 곧 초자연적 삶, 옛 아담의 삶과 새 그리스도의 삶, 지상의 삶과 천상의 삶이다\. 옛 삶에 대한 사랑과 성향은 아래에서, 땅과 육신에서 나오며 지상적이고 육신적이다\. 육신에서 난 것은 육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생명과 새 사랑과 새 성향과 새 두려움은 위에서, 거듭남이 일어나는 하늘에서 온다\. 요 3:6

>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사용하도록 사물을 주셨지, 사랑하도록 주신 것이 아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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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게네스 \- *아가 주석*

옛 삶은 불순종과 자기 뜻으로 이루어지며, 하는 모든 일에서 자신을 사랑한다\. 누군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불평하고 신음한다\. 새 삶은 하나님의 순수한 뜻과 순종이며, 사람의 영혼적인 면이 행위와 감정의 모든 측면에서 드러내는 것을 미워한다\. 아버지가 아무리 세게, 오래 매질하더라도 아버지의 회초리에 입을 맞춘다\.

## 우리 삶의 위험

우리 삶이 얼마나 큰 위험에 처해 있는지, 내어 맡기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빨리 자기 영혼을 파괴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타락한다\. 모세의 말에서 겔라센하이트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새끼 난 소로 땅을 갈거나 밭을 일구어서는 안 된다\. 첫 새끼 난 양의 털을 깎아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하나님께 거룩하다\.” 신 15:19 땅을 갈고 밭을 일구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로 우리 자신을 섬기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 말고 무엇을 뜻하겠는가? 첫 새끼 난 소는 하나님께 속하므로, 아무도 첫 새끼 난 소로 밭을 갈 수 없었다\.

모든 좋은 선물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은 그분께서 종들 안에 창조하신다\. 선한 모든 것은 우리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다\. 그러므로 좋은 것들로 우리 자신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첫 새끼 난 양의 털을 깎아서는 안 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거룩하게 하신 모든 것, 곧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에서 자기 이익이나 명예나 영광 또는 자기에게 유익한 다른 것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뜻 말고 무엇이겠는가?

## 믿음

그리스도께서는 누가 믿을 수 있는지 감추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믿기를 원한다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와 찬양과 뜻과 사랑이 우리 안에서 능력 있게 다스리면 자아와 나 됨과 자기 몰두는 시들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특징이자 본질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수치, 하나님의 덕과 능력과 우리의 악함과 연약함, 하나님의 무언가와 존재와 우리의 무를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면서 겔라센하이트 바깥에 머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명예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겔라센하이트가 없는 곳에는 믿음도 없다\.

## 순수한 사랑

그리스도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두지 않은 줄 내가 안다\. 너희가 자기 영광을 구하기 때문이다\.” 요 5:44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영혼의 사랑은 함께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땅과 부모와 자녀와 아내를 버리면서도 영혼으로는 내어 맡기지 않을 수도 있다\. 내어 맡김과 포기 그 자체를 사랑하고 즐길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내가 사랑해야 할 것은 무엇이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 기쁨이 되기 때문에 사랑해야 한다\. 어떤 사람을 기쁨을 얻기 위해서나 나를 위해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순간 그 사랑을 버려야 한다\.

## 우리가 창조된 이유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가 그 안에서 행하도록 그 일을 마련하셨다\. 엡 2:10 우리 안에 선한 생각이나 선한 뜻이나 선한 존재나 선한 일이 있다면, 그것들을 창조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자신을 그것들의 창시자로 여길 권리가 없다\.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권리가 없는 것을 자기에게 돌리면, 하나님께 속한 것을 훔치고 빼앗는 것이다\.

내어 맡기지 않는 태도는 도둑질하는 강도와 같아서 자기 것이 아닌 선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움직여 선을 행하게 하신다면, 그것은 움직임을 받는 막대기와 같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이루는 일을 우리 것으로 돌릴 수는 없다\. 움직이는 죽은 막대기에 능력이 있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주제에 관해 곧 더 쓰겠다\. 그동안 하나님을 향한 열망에 있어 용감하고 굳세어라\! 아멘\. \~

## 잔을 깨끗한 물로 채우는 법

잔을 깨끗한 물로 채우는 첫 단계는 놀랄 만큼 간단하지만… 너무나 자주 간과된다\.

잔에 원래 담겨 있던 내용물을 모두 깨끗이 비워라\!

그런데도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우리는 옛 삶의 일부를 끈질기게 붙든 채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로 삶을 채우려 하는 일이 얼마나 잦은가\.

물론 우리는 “추한” 것을 버리거나 버리려 한다\. 그러나 나쁜 것만 골라내고 좋은 것은 남겨 두는 일은\(특히 선과 악을 분별하도록 감각을 훈련받지 못한 새 신자라면\) 진흙탕물 한 잔에서 흙먼지 알갱이를 골라내려는 것과 같다\.

먼저 잔의 *내용물을 모두* 비운 뒤 깨끗한 물로 다시 채우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모든 것을 버리라”는 가르침을 두려워한다\. 지나치거나 독재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적어도 실천 불가능해 보인다\. 대부분은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정말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게 아니야…”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그대로를 뜻하셨다\! 우리 삶을 비참하게 만들려 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놓고—그것에서 초연해지고—무엇을 다시 들여놓을지 *그분께서* 결정하시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더러운 잔을 깨끗한 물로 채우려 하거나, 진흙탕물 한 잔에서 우리가 흙을 골라내려 하는 셈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삶을 억지로 비우지 않으신다\. 우리를 그렇게 부르시지만, 우리가 기꺼이 응답할 때까지 기다리실 것이다… 그러면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택하신 것으로 우리 삶을 채우실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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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이 글은 OpenAI의 인공지능(모델: gpt-6-luna)으로 번역되었으며 아직 사람의 검토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영어 원문이 권위 있는 기준입니다. 의미가 불확실한 경우 영어 원문을 확인해 주십시오. <a href="/en/christian-living/gelassenheit-purposeful-detachment/" data-source-article-id="51c6b872-b5d3-45c6-a0b1-d1dd48ece711" hreflang="en">영어 원문</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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